1985년 미국이 무역·재정의 쌍둥이 적자 해소를 위해 일본·독일과 협상해 달러화 가치를 내리고 엔화·마르크화 가치를 올리기로 하는 ‘플라자 합의’를 맺는다. 이후 불과 1년 만에 달러당 엔화 환율이 240엔 수준에서 150엔대로 떨어졌다. ‘엔고 불황’을 우려한 일본은 기준금리를 급격히 낮췄다. 이로 인해 주식·부동산 시장에 엄청난 버블이 생겼고, 엔고를 바탕으로 한 해외 투자도 봇물을 이뤘다. 마침내 일본은 1991년에 세계 최대 채권국이 됐다. 일본 경제는 거품이 꺼지고 최근까지 장기 저성장에 빠졌다.
■ 세계 최대 채권국은 한 국가의 정부·기업·개인이 보유한 대외총자산에서 대외총부채를 뺀 대외순자산이 가장 많은 국가를 의미한다. ‘돈을 가장 많이 빌려줬거나 투자해준 나라’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나라는 국내 경제가 정체돼도 해외 자산에서 나오는 이자나 배당금으로 안정적인 소득을 올릴 수 있다. 경제 위기에 흔들리지 않고 국제 협상력을 높일 수도 있다. 19~20세기 초에는 산업혁명과 해상 패권을 기반으로 영국이 세계 최대 채권국이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 이후에는 참전국들에 돈을 빌려주고 유럽 부흥을 위한 ‘마셜 플랜’까지 실행한 미국이 40여 년 동안 그 자리를 대신했다.
■ 일본이 34년 만에 세계 최대 채권국 자리를 독일에 내줬다고 27일 블룸버그통신이 보도했다. 2024년 말 일본의 대외순자산이 533조 500억 엔(약 5096조 원)으로 569조 7000억 엔을 기록한 독일에 추월당했다는 것이다. 엔화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고 있다는 분석도 뒤따르고 있다. 중국은 미국 국채 보유국 1~2위를 다투기는 했지만 516조 3000억 엔으로 여전히 일본을 밑돌며 3위를 유지했다. 한국의 대외순자산은 1조 1023억 달러가량으로 세계 7~8위로 추정된다. 일본처럼 ‘잃어버린 30년’을 겪지 않으려면 노동 개혁, 수출 다변화, 기술 혁신에 적극 나서고 미국발(發) 관세 전쟁에도 현명하게 대처해야 한다.
<오현환 /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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