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끝에 묻어오는 잎새들의 소식이 향기롭다. 해년마다 오월이 오면 바빠진다. 하늘은 유난히 푸르고 나무는 잎을 틔우고 꽃들은 서로 질세라 만개하는 계절이다. 한국의 5월은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로 많은 감사의 말과 선물이 오가는 사랑의 달이다. 미국에서는 어린이날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특별하지 않은 것 같다. 어린이는 예쁘다든가 귀엽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세상을 있는대로 받아들이는 선명한 눈과 하고 싶은 것을 결정하는 어린 마음들이 귀하다. 햇살 같은 어린 아이들은 어디든 스며들어 따사롭게 나누고 친구가 된다. 단순한 듯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쓰고 싶은 크레파스의 색깔로 자기를 표현해 낸다. 넘어지면 울던 아이들이 스스로 일어나 툭툭 털어낸다. 궁금한 것 신기한 것 알고 싶은 것이 많다.
한글학교를 다녀 나오는 손녀를 만났다. 내년이면 졸업이라 한다. “이제 한국말로 더 많이 이야기 하자.” 하니 며느리(한글학교 교사)가 “리디아는 한글로 에세이도 써요”한다. 한글로 에세이를 써서 할머니에게 보내겠다며 배시시 웃는다.
손녀를 보며 깨달아 지는 것은 그저 바라만 보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안에서 나를 찾아내고 있다는 것이다. 손녀의 배움과 실천에는 할 일을 놓치지 않고 스스로 해나가는 집중력과 하고 싶은 것을 해 내는 추진력이 있다. 무엇을 열심히 하고 있을 때, 새로운 지식을 찾아 열정으로 도전할 때 아이의 눈은 반짝거린다. 같은 시간에 아이와 나는 닮은 두개의 시간을 교감하며 살고 있다. 손녀에게서 나의 지난 날을 본다. 내 속에 있는 기억들을 꺼내주는 존재임을 느낀다. 무엇이든 배울 기회가 있으면 때를 놓치지 않고 열심히 배운다. 맡은 일을 성실하게 하며 일을 찾아 하는 센스가 있다. 무엇이든 빨리 배운다. 이해가 빠르고 말하지 않은 것 조차 자기 것으로 만들어 낸다. 어리지만 말이 통한다. 대화하는데 아무 걸림이 없다.
주변을 살필 줄 알고 내 몫을 찾아 해낸다. 가르치는 말에 귀를 기울이고 같이 해보려고 애쓴다. 가르친다기보다 나를 향해 마음을 열고 가까이 오고 있다. 아이의 품성에서 정스러움을 본다. 사과 하나를 씻어도 뽀독뽀독 씻어 두었다가 오빠와 쌍둥이의 간식으로 가방에 넣어준다. 사랑의 눈으로 또 다른 나를 바라보며 아이가 꿈꾸는 대로 이루며 살아 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
주위 분들이 리디아가 할머니를 꼭 닮았다는 말을 할 때면 가슴이 뿌듯하다. 같은 시간에 세대의 경계를 넘어 이어지는 연결성을 본다. 아이가 무엇인가 열심일 때 나도 내 기억의 조각들을 되살리며 내 속에 있는 불씨를 함께 피워낸다. 내가 살아온 시간과 아이가 살아갈 두개의 시간이 나란히 흐르고 있다. 두개의 마음이 시간의 교차 속에서 더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함께 이야기 하고 나면 오히려 내가 아이에게서 많은 것을 얻는다. 가르침과 배우는 열심이 서로를 만난다. 배우는 기쁨을 아는 것이 고맙고 신통하다. 두 세대가 마음을 함께 한다는 것, 둘의 사랑이 조화롭게 이어지는 것에 감사하다.
손녀가 궁금한 세상을 마주하고 거침없이 걸어갈 줄 알고, 더욱 지혜롭고 총명한 아이로 자랄 수 있기를, 모두에게 사랑받는 아이로 자라기를 소망한다. 오늘 문득 올려다 본 하늘은 유난히 푸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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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형숙 수필가 미주문협 총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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