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신문에서 아주 작은 기사 하나를 보았다. ‘ACRO 북클럽’ 모임이 한인타운에서 열린다고. 이번 모임에선 3개월에 걸쳐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읽고 우주의 기원과 생명의 기원에 대해 공부하며 그 의미를 토론한다고. 장소와 시간, 그리고 연락처만 알린 아주 짤막한 안내 기사였다. 10여명의 회원이 있고 원하는 책들을 골라 읽으며 한 달에 한 번씩 모여 각자 읽은 것을 나누며 토론하는 10년 정도 된 작은 모임이라는 얘길 들었다.
모임의 성격과 주관하는 분의 진정성이 통했는지 나는 바로 해피 서점으로 갔고 700여 페이지가 넘는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사 갖고 왔다. 다른 욕심은 별로 없는 편인데 책에 대한 욕심은 좀 있는 편이여서, 읽지도 않고, 아니 읽지도 못하고 싸놓고 있는 책들이 수두룩하다. 이번 바쁜 일 지나면 꼭 읽어야지, 그럼 꼭 읽을거야 하면서 스스로에게 그럴 듯한 이유를 대 보기도 하지만 수북하게 쌓여 가는 책들에게 미안하고 부담스럽기만 한데, 또 책을 사다니. 이번에는 내가 혼자 하는 게 아니고 여럿이 함께 하니 해 낼 수 있을 거라는 마음으로 두꺼운 책을 겁 없이 집어들고 왔다.
책을 펴고 서문을 보고 두루 뒤적여 본다. 그리스어로 ‘질서’와 ‘조화’를 뜻하는 우주, 코스모스는 과거에도 있었고 현재에도 있으며 미래에도 있을 그 모든 것이다. 과학자 칼 세이건은 ‘인류는 영원 무한의 시공간에 파묻힌 하나의 점, 지구를 보금자리로 살아가고 있다’고 말한다.
영원 무한의 시공간에 하나의 작은 점, 모래알 같은 지구 속에서 우리는 복닥거리며 살고 있다. 하지만 바닷가 모래사장에 앉아 끝없는 수평선을 바라 보 노라면 아득한 그 너머에 내가 그리는 고향이 있고 보고 싶은 사람들의 얼굴이 파도 처럼 밀려오며 다가 갈 수 없는 엄청난 거리감에 모래알 같은 지구라는 말은 사라지고 거대한 지구로 다가온다. 광활한 우주와 모래알 같은 지구는 상상 속에서만 가능할 뿐, 망망대해 앞에서 아주 아주 작은 지구인인 나는 밀려오는 파도에 그저 발을 담가 볼 뿐이다. 모래로 집을 짓고 우물을 만들며 깔깔 거리는 아이들이 정겹다.
글자와 발음이 같은 코스모스의 또 다른 뜻은 가을에 무더기로 피는 코스모스 꽃의 이름이다. 질서와 조화를 뜻하는 우주와 섬세하고 가녀린 코스모스 꽃 한 송이에는, 우주의 별처럼 셀 수 없이 많은 작은 꽃잎과 질서 정연한 구조가 숨어 있어 붙여진 이름이란다. 바람에 흔들리는 꽃 속에, 총총히 박힌 별무리 처럼 펼쳐진 꽃술을 바라보노라면, 자연 속 작은 꽃 안에서 또 하나의 질서와 조화를 담은 우주를 만나게 된다. 가을 들녘의 꽃이자, 우리 모두가 속한 우주를 닮은 ‘하늘 아래의 또 다른 코스모스’ 우주와 꽃, 그들은‘질서 있고 조화로운 전체’를 표현하는 공통된 뿌리를 지닌 셈이다.
과학 연구뿐 아니라 대중과 소통하며 과학을 일상 속으로 끌어들인 대표적 천문학자이자 과학 커뮤니케이터로 평가받는 칼 세이건은 1996년 우리 곁을 떠났지만 지금도 그의 업적은 전 세계 과학과 대중문화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밤 하늘의 별을 보며 상상할 수 없는 거리에서 상상할 수 없는 시간을 지나 나에게 다가오는 별들에게 고맙고 반갑다는 손짓이라도 하고 싶다. 끝까지 완독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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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라 김 서예가ㆍ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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