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이체의 철학은 인간의 비소화된 원인 규명으로 부터 출발한다. 인간이 비소화 된 원인은 중세의 기독교, 근대의 대중화, 기계화로 보고 있다. Machine는 인간으로 부터 창조의 기쁨을 탈취했다. Demoes는 고귀한 것을 인정하지 않고 일체를 평준화하려는데 모순이 있다. 거기에는 저속한 다양성은 있어도 창조적 개성은 없다.
Christianity 모랄의 근저에는 생의 퇴락이 서성거리며 교리는 허구로 가득 차 있다고 비판했다.
니이체의 바울에 대한 해석은 처참하다. 니이체는 바울을 저주한다. 바울은 예수의 적이기 때문이다. 바울은 예수의 죽음을 통해 구원을 얻는다는 이론을 펴서 기독교를 만든 장본인이다. 이것은 거짓이고 악이다. 유대인들이 예수를 죽인 것처럼 바울은 예수의 근본 사상을 말살했다.
니이체의 예수에 대한 해석은 애절하다. 니이체는 예수를 무한히 존경했다. 그는 거짓을 모르는 정직한 사람이었다. 그는 모든 사람을 사랑했다. 그는 누구도 미워하지 않고 싸우지도 않았다. 예수는 진리를 위해서 죽어가는 강한 정신의 참 모습이었다. 예수는 죄나 신앙이나 그런 관념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예수의 일생은 생의 실천이요, 일체의 거짓이 없는 순수한 것이다. 예수는 바울이 상상하는 구세주가 아니다. 그는 착하게 진실하게 산 것뿐이다.
유대인들은 왜 예수를 로마 식민정권에 고발했을까? 예수는 유대 율법을 배척했기 때문이다. 예수가 십자가 묶여 33세에 요절한 것은 너무도 비통한 노릇이다. 그는 결코 자신이 하느님과 동격이라는 신(神)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만약 그가 오래 살았다면 진실된 삶을 배웠을 것이다. 그야말로 대지(大地)를 사랑하는 법을 배웠을 것이다. 예수처럼 사는 것이 기독교이지 예수의 공로를 믿고 구원을 얻는 것이 기독교가 아니다. 기독교의 본질은 행(行)에 있지 믿음에 있는 것이 아니다.
신, 영혼, 은총, 죄와 벌, 용서,회개, 천국, 지옥, 최후의 심판, 종말, 부활, 승천, 재림 이런 개념들은 신기할 뿐만 아니라 때로는 목가적인 감마성마저 곁들인 편협한 분위기가 가득하다. 거기에는 솔직하고 공정한 것이란 아무 것도 없다. 그 속에는 순수성이란 본능이 결여돼 있다. 이러한 개념들은 현실과는 관계없는 가공의 개념들이다. 그렇다면 왜 이러한 허구의 개념들을 만들어 냈을까? 그 근본 이유는 현실 세계의 불만을 해소시키기 위해서이다.
이것은 자연성의 박탈이며, 인간성의 박탈이다.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고통이 수반된다. 이것은 자연의 질서이다. 이것은 운명이다. 운명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철광석이 철근이 되기 위해서는 용광로에 들어 가듯이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고통을 이겨내야 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생명의 본질이 무엇인지 알아 내야 한다. 생명의 본질은 무엇인가? 니이체는 ‘권력의지’다라고 말하고 있다. 권력의지란 저항을 극복하고 부단히 강해지 려는 생의 움직임이다. 선이란 권력 의지를 앙양시키는 것이고, 악이란 나약에서 나오는 것이며, 행복이란 권력 의지가 증가되어가는 감정이다.
니이체는 고독한 철학자였다. 그는 시대의 이방인으로 취급될 수 밖에 없었다. 2천년에 걸친 기독교의 근본 사상을 뒤 흔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버려지고 길을 잃고, 끝없는 무(無) 속을 헤매며 방황했다. 그는 고독과 우수 속에서 그 시대에 준엄한 비판을 내리고 갔다. 그가 얼마나 소외되고 고독한 생활을 했는가는 ‘고독은 나의 고향이다’라는 말로 단적으로 드러난다.
신이란 무엇인가? 시초도 종말도 없는 어떤 것이다. 자연의 배후에는 어떤 설계자가 있다고 믿는게 신앙인들이다. 설사 이 세계가 무너진다 하더라도 내가 거기서 붙들고 의존할 수 있는 것은 신뿐이다. 어떤 실체가 존재 하려면 그것이 우리에게 이해될 수 있어야 한다. 명사는 동사 없이 설명이 불가능하다. 믿음은 증명되어져 한다. 불행하게도, 니이체는 인류 역사를 통틀어 증명된 바 없다고 단언한다. 우리는 십계명이나 칸트의 정언명령과 같은 보편적 도덕 원칙에 따라 의무를 다하는 것만으로는 세상을 살 수 없다. 권력 의지가 만들어 낸 초인만이 세상의 고통과 허무로 부터 탈출할 수 있다. 이것만이 존재(being)를 넘어선 진정한 실존 (existence)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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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국 정치 철학자,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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