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 사이버보안법 초안 공개
▶ 네트워크·반도체 등 18개 분야
▶ 고위험 공급 업체 순차적 제거
▶ 6개월내 핵심 장비 교체해야
▶ 타깃 ZTE 등 중국기업 강력 반발
▶ 삼성·노키아 등 반사이익 기대
유럽연합(EU)이 사이버 보안 위협을 이유로 중국산 통신장비·전자제품 퇴출에 나선다. 5세대(5G) 이동통신 기지국 장비는 물론 반도체, 자율주행차, 태양광 패널 등도 규제 목록에 올랐다. 화웨이·ZTE 등이 즉각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삼성전자를 비롯한 국내 업체들의 반사이익도 기대된다.
20일 EU 집행위원회는 새 사이버보안법(Cybersecurity Act) 초안을 공개했다. ‘고위험 공급 업체’로 분류된 기업 장비를 EU 내에서 단계적으로 제거하는 게 핵심이다. 퇴출 대상은 자율주행차, 전력 공급망, 드론, 컴퓨팅, 의료, 우주항공, 반도체 등 18개 분야다.
지난해 2분기 EU 집행위는 EU 내에 ‘특정 국가’가 지원하는 사이버 공격이 전년 동기 대비 22% 늘어나 3910억 달러(약 575조 원) 상당의 피해를 봤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고위험 공급 업체’, ‘특정 국가’ 등이라는 표현으로 에둘러 설명했으나 사실상 중국을 겨냥한 전략적 규제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헤나 비르쿠넨 EU 기술 주권·안보·민주주의 담당 수석 부집행위원장은 “새 사이버보안법은 민주주의, 경제, 삶의 방식에 대한 전략적 위험에 대응할 수단”이라고 강조했다.
사이버보안법은 아직 초안 단계로 실제 적용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반면 EU 집행위가 2020년부터 회원국에 권고해온 5G 네트워크 보안 강화 지침인 ‘툴박스(tool box)’에는 즉각 효력이 발생한다. 이 규제는 통신망 내 고위험 공급 업체 장비 사용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기존에는 권고 수준에 그쳐 일부 국가만 중국산 장비 퇴출에 나섰으나 이번 결정으로 재정적 제재 등 법적 구속력을 갖추게 됐다. EU 내 통신사업자들은 36개월 내에 문제 업체 장비의 핵심 구성 요소를 교체해야 한다. 광섬유·해저케이블·위성망 등의 교체 기한도 추후 논의할 예정이어서 네트워크 인프라 전반에 대한 재투자가 불가피하다.
유럽은 핀란드의 노키아, 스웨덴의 에릭슨 등 네트워크 장비 관련 대표 기업의 본고장임에도 화웨이·ZTE 장비 사용 비중이 높다. 저렴한 중국산 장비가 가격 경쟁력을 높이 평가받았기 때문이다. 중국산 통신장비는 유사한 성능의 유럽산 대비 20~40% 저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유럽 통신사업자들은 EU 집행위 권고와 지속적인 보안 위협에도 장비 교체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세계이동통신사업자협회(GSMA)는 중국 장비 배제 시 유럽의 5G 구축 비용이 550억 유로(약 100조원) 늘어날 수 있다고 추산한다.
표적이 된 화웨이는 즉각 반발했다. 화웨이는 “사실 기반 증거나 기술이 아닌 국적에 따른 차별”이라며 “EU의 공정성·비차별성·비례성 원칙과 세계무역기구(WTO) 의무를 위반하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규제 강화 배경에 EU의 기술 자립 전략이 자리 잡고 있는 만큼 중국 업체들이 퇴출을 피할 길은 좁아 보인다. 미국 싱크탱크 애틀랜틱카운슬은 최근 보고서에서 “EU 집행위가 중국의 국가 주도 경제와 보조금 정책이 유럽에 구조적 위협이라는 판단 하에 대중국 관여 정책에서 ‘디리스킹(위험 완화)’으로 급격히 선회했다”고 분석했다.
타 네트워크 장비 공급사들은 내심 반색하는 분위기다. 시장조사 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2024년 매출 기준 글로벌 무선접속망(RAN) 시장점유율은 화웨이 34.2%, 에릭슨 25.7%, 노키아 17.6%, ZTE 11.4%, 삼성전자 4.8%, 기타 6.3% 순이다.
당장 수혜가 예상되는 기업은 유럽이 본진인 노키아·에릭슨이다. 삼성전자와 국내 관련 기업들도 반사이익을 볼 수 있다. 삼성전자는 2021년 유럽 통신사 보다폰과 영국 내 5G 네트워크 장비·가상화기지국(vRAN) 공급계약을 맺었고 최근에는 유럽 전역에 오픈랜(Open RAN) 솔루션을 보급 중이다. 중장기적으로는 차세대 6G 이동통신망 경쟁에서 중국을 배제할 수 있다는 기대감도 크다. 미국은 이미 2022년 중국산 네트워크 장비를 전면 퇴출시킨 바 있다. 영국도 2027년까지 화웨이 장비를 철거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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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제=윤민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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