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단은 절대적 진리가 아닌, 그 시대의 답안지다
최근 미국을 비롯한 서구권에서는 수십 년간 정석으로 여겨지던 ‘식품 피라미드’가 뒤집히고 있다. 탄수화물을 가장 넓은 기단에 두었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단백질과 좋은 지방의 비중을 높이고 정제 탄수화물과 당류를 억제하는 ‘역피라미드’ 형태의 식단이 새로운 표준으로 떠오르는 추세다.
많은 이들이 이를 두고 “과거의 식단 지침은 로비에 의해 만들어진 엉터리였으며, 이제야 비로소 과학적인 정답을 찾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한의학적 시각에서 이 거대한 변화를 바라보면, 이는 단순한 ‘오답과 정답’의 문제가 아니다. 그보다는 시대가 변했고,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몸이 달라졌다는 강력한 신호로 읽힌다. 식단은 불변의 진리가 아니라, 당대의 몸이 요구하는 가장 시급한 답안지이기 때문이다.
과거의 식단은 과거의 몸을 위한 최선이었다
과거의 영양 지침이 만들어지던 시절로 시계태엽을 돌려보자. 그 시절은 ‘결핍의 시대’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강도의 육체노동에 시달렸고, 하루 활동량은 지금의 현대인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반면 먹을거리는 부족했다. 간식은 드물었고, 설탕이 주는 강렬한 단맛은 특별한 날에만 누릴 수 있는 호사였다.
이런 환경에서 인체는 끊임없이 고갈되는 에너지를 채우기 위해 고열량의 탄수화물을 갈구했다. 한의학적으로 보아도 당시의 사람들은 기운이 달리고 몸이 차가워지는 ‘기허(氣虛)’와 ‘양허(陽虛)’의 상태가 많았다. 그랬기에 인삼, 녹용, 대추, 생강처럼 기운을 북돋고 몸을 따뜻하게 데워주는 약재가 명약으로 통했고, 개고기나 흑염소 같은 고지방 보양식이 환영받았다. 당시의 식단은 텅 빈 곳간을 채워야 하는 몸을 위한 필연적인 선택이었다.
현대의 식단은 ‘과잉과 울화’의 몸을 반영한다
하지만 지금은 전혀 다른 세상이다. 우리는 육체 대신 머리를 쓰는 정신 노동의 시대를 살고 있다.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은 길어졌고, 근육을 쓰는 일은 줄어들었다. 반면 스트레스는 극심해졌고, 손만 뻗으면 닿는 곳에 정제된 당분과 가공식품이 넘쳐난다.
이러한 환경 변화는 현대인의 몸을 완전히 다른 체질로 바꿔 놓았다. 현대인의 병은 더 이상 ‘부족함’에서 오지 않고, 대부분 쓰지 못하고 쌓여 있는 ‘과잉’에서 온다. 한의학식으로 표현하면 스트레스로 인해 가슴 속에 열불이 쌓이는 ‘화(火)’와 노폐물이 배출되지 못해 생기는 ‘습담(濕痰)’이 현대인의 주된 병리다. 그래서 요즘 한의원 진료실에서는 과거처럼 기운을 무조건 끌어올리는 보약보다는, 울체된 기운을 풀어주고(소통) 위로 치솟은 열을 식혀주는(청열) 처방을 훨씬 자주 쓰게 된다. 입맛을 돋우는 약보다, 과항진된 식욕을 진정시키고 위장의 열을 끄는 약이 필요한 시대가 된 것이다.
유행하는 음식이 바뀐 진짜 이유
음료 시장의 트렌드 변화도 이 흐름을 명확히 보여준다. 과거에는 십전대보탕이나 쌍화차처럼 진하고 달달하며 몸을 데워주는 음료가 인기였다면, 요즘은 아이스 아메리카노, 콤부차, 알로에, 녹차, 코코넛 워터처럼 쌉쌀하고 시원하며 몸의 열을 내려주는 음료들이 거리를 점령했다.
사람들이 갑자기 영양학적으로 지혜로워져서가 아니다. 대중의 몸이 본능적으로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찾아 움직인 결과다. 문의 (703)942-8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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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윤 예담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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