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칼리 선교지 ‘예수 마을’안 의 교회가 화재를 당했다. 교회의 건물이 소실되고, 골절조차도 휘어져 볼품없이 되었다. 벽은 먼지와 그을음으로 가득했다. 광장에는 검은 먼지가 바람에 날렸다.
교회의 ‘멕시칼리’벽화 팀이 그 곳에 갔다. 우리는 교회 안쪽 벽에 성화를 그렸다. 아침 해가 뜰 때부터 저녁 노을이 질 때까지 우리는 뜨거운 하루를 벽 앞에서 보냈다. 벽화 팀에 구성된 어린아이부터 장년에 이르기 까지 붓을 들고 각자의 맡은 벽에 색을 칠해간다. 색깔이 진해질수록 완성되는 그림을 볼 기대에 우리의 마음은 두근거렸다. 아이들은 바게트에 물을 수없이 갈아 와서 붓 빠는 일을 도왔다.
어린아이들은 뜨거움 아래에서 돌멩이 쌓기를 했다. 밖은 125도의 열기로 마치 사우나에 들어온 듯 숨이 턱턱 막혔지만 교회 안은 에어컨 덕분에 덥지 않게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성화는 한 장면씩 우리 손에서 되살아났다. 예수 탄생의 빛, 예수께서 요한에게 세례 받는 장면, 물위를 걷는 예수, 오병이어 기적의 동산에 모인 수많은 얼굴들, 12년 혈루증의 여인이 간절함으로 예수의 옷자락을 만지는 장면, 갈보리 언덕의 십자가, 승천하는 장면까지 마음을 다했다. 그림 속의 예수의 눈빛을 조금 더 부드럽게 그리려는 손길, 아이들의 모습은 더 귀엽게, 하늘과 풀은 더 싱그럽게 그리려는 손길이 아름다웠다.
하루가 깊어갔다. 시간은 조용히 흐르는 것 같았지만, 벽에 드리운 그림자의 방향은 어느새 달라져 있었다. 정오의 빛이 벽을 하얗게 덮더니, 그림자는 서서히 길어지기 시작했다. “어느새 해가 교회 유리창을 한바퀴 돌아왔어요. 저 노을 좀 보세요.” 누군가 말 했다. 유리창 밖의 저녁노을이 서쪽의 검은 산 위로 번지기 시작했다. 노을 속에서 잔잔한 기쁨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기쁨의 물결은 우리 하루의 땀과 정성을 품어 안고 가슴 깊은 곳까지 차올랐다. 그 것은 저 멀리 바다에서 소리없이 다가오는 밀물 같았다. 밀물은 우리가 해낸 하루, 그 하루 동안 쌓아온 땀과 정성 위로 천천히 밀려왔다.
첫 붓질에서 시작한 아침 햇살은 어느새 저녁 노을이 되었다. 저녁 노을이 서서히 교회의 유리창을 통해 붉게 들어와 앉았다. 예수 승천 장면에 마지막 붓칠을 할 때쯤, 우리가 그린 벽화 장면 위에 축복처럼 붉은 노을이 조용하게 내려앉았다. 그날의 노을은 우리가 그린 그림처럼 화사하고 아름다웠다. 그 빛은 숨가쁘게 달려오는 밀물처럼 하루의 수고를 한꺼번에 품고, 해냈다는 기쁨이 소리 없이 차오르며 교회 벽을 채우고, 우리의 마음에도 차 올랐다. 노을 빛이 깊어질수록 고단함, 땀, 붓 빠는 물소리, 아이들 웃음소리, 그리고 정성을 담은 밀물이 한꺼번에 가슴으로 밀려왔다. 불에 탄 벽 위에 다시 그려진 성화의 장면들이 노을 빛에 물들며 하나의 거대한 성경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노을과 밀물은 결국 하나였다. 우리의 손길 위로 번진 노을이 조용히 우리 마음에 밀물로 차올랐다. 노을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빛의 밀물이었고, 우리의 기쁨은 마음에서 일어나는 또 하나의 밀물이었다. 그것은 내 안의 빈 자리를 조용히 채워갔다. 바닷물이 해안 쪽으로 차오르는 때처럼 조용히 우리의 마음으로 차 올랐다.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파도를 품은 작은 바다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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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형숙 시인·수필가 미주문협 총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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