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서 활동하는 한인작가 허경애씨 개인전이 샌타모니카에 위치한 갤러리 12(Galerie XII LA)에서 열리고 있다.
시간을 켜켜이 쌓고 다시 그 시간을 깎아내는 허경애 작가의 고요하면서도 강렬한 작업 세계는, 현대 미술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깊은 사유의 지점으로 명상적이고 촉각적인 그의 회화는 유럽과 아시아 전역의 관객들을 사로잡고 있다.
캔버스 위에 50여 겹의 아크릴 물감을 쌓고, 이를 다시 날카로운 메스와 칼날로 깎아내고 찢어내어 재조합한다. 이 같은 작업 과정은 마치 땅속의 유물을 찾아내는 고고학자의 발굴 작업이자 훼손된 기억을 치유해 나가는 재생의 과정과도 닮아 있다.
작가는 캔버스에 쌓아 올린 수많은 물감 층을 물리적으로 ‘굴착’한다. 이 치열한 수행의 과정을 통해 드러나는 것은 단순한 표면이 아닌, 혼돈과 고요가 공존하는 하나의 시각적 지형이다. 작가는 구상이나 기록적인 방식을 배제하고 자신만의 추상적 언어를 통해 이야기를 건넨다.
이는 작가의 고향인 광주에서 1980년 5월 18일이 남긴 아픈 기억과 문화적 재건이라는 역사적 맥락과도 무관하지 않다. 그녀의 작업은 시대의 비극을 직접적으로 묘사하는 대신, 캔버스를 깎아내고 다시 덧붙이는 행위를 통해 기억을 복구하고 승화하는 은유적 장치로 기능한다.
1977년 광주에서 태어난 허경애 작가는 한국의 현대미술 거장들이 이끈 ‘단색화’의 철학적 토대 위에 서 있다. 그러나 그녀는 이를 자신만의 조각적 시각으로 재해석한다.
전남대와 성신여대에서 수학한 뒤 프랑스로 건너가 에콜 내쇼널 쉬페리외르 다르 파리-세르지(ENSAPC)와 파리 1 판테온-소르본 대학에서 수학하며 서구의 추상과 철학적 탐구를 더했다.
특히 판화 전공을 통해 다져진 표면과 반복에 대한 감각은 그녀의 작품에서 독보적인 질감으로 나타난다. 관람객은 그녀의 작품 앞에서 단순히 시각적인 감상을 넘어, 캔버스가 내뱉는 고요한 울림을 귀 기울여 듣는 ‘정적인 참여’를 요구받게 된다.
허 작가의 예술적 성취는 이미 국제 무대에서 활발히 증명되고 있다. 파리, 서울, 홍콩, 부다페스트 등 세계 주요 도시에서 개인전을 개최하며 명성을 쌓아왔으며, 아트 파리(Art Paris), 브라파(BRAFA), 스왑 바르셀로나(SWAB Barcelona), 아시아 나우(Asia Now) 등 유수의 국제 아트 페어에 참여하며 컬렉터와 평단의 주목을 받았다. 최근 프랑스 파리의 세르누스키 미술관(Musee Cernuschi)이 작가의 작품을 소장했다.
전시는 오는 4월25일까지 갤러리 12(2525 Michigan Ave. Suite B2, Santa Monica)에서 계속된다. 문의 (424)252-9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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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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