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크라멘토에서 산타클라라까지, 쌩쌩 달려도 차로 얼추 두시간반 거리다. 출퇴근 시간대를 피해도 너끈히 세시간은 잡아야 한다. 왕복이면 여섯시간이다. 게다가 토요일 오후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노동의 닷새를 용케 슬렁슬렁 보냈다 해도 맬없이 나른해져 새로 행장을 차리고 먼 길을 나서는 게 내키지 않을 시간대다.
최아무개 여사는 그런데도 행사장을 찾았다. 독실한 불자도 아니다. 가족 빼고는 일터와 교회밖에 모른다던 50대 초반 주부다.
기독교인 최씨의 동참이 유별날 건 없었다. 40세 전후 홍아무개 목사는 아예 희망 서포터즈 티셔츠를 입고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무대장치 장내정리 등 도우미로 활동했다. 홍 목사의 친구들도 동참했다. 어느 성당 신부님과 신도회장은 주일미사를 마친 뒤 신도들에게‘스님이 기획한 콘서트’를 홍보했다. 불자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종교뿐 아니었다. 세대의 벽도 없었다. 고교생 허나영 양은 언니오빠뻘 이모삼촌뻘 틈에 끼어 도우미 역할로 온종일 바빴다.
UC샌디에고에 다니는 공한백 군은 개학직전 금쪽같은 쉴짬을 누나와 함께 행사장 봉사로 보냈다. 이들 또래 청춘남녀들의 행렬이 꼬리를 물었다.
아들며느리 혹은 손자손녀와 함께 행사장을 찾은 어르신들도 많았다. 출입구 가까운 객석 가장자리에 앉아 있다 바로 옆 유모차에서 자던 아기가 깨어나 울거나 소리를 지를라치면 교대로 부리나케 나갔다 들아오는 젊은 부부도 한둘이 아니었다.
지난 8일(토) 산타클라라 컨벤션센터에서 열린‘2012 희망세상만들기 청춘콘서트’(주최/평화재단, 공동주관/정토회미주사무국, SF정토회, 특별후원/SF한국일보)는 종교초월 세대초월 호응속에 진행됐다.
줄잡아 1,300명이 함께했다. 말이 콘서트지 실은‘열린 대화마당’인 이런 행사에 수십수백명도 아니고 천수백명이 모인 것은 북가주 한인사에 유례드문 일이다.
행사시작(오후 4시) 이삼십분 전에 도착해 7시30분 조금 넘어 끝날 때까지 지켜본 샌프란시스코한인회 권욱순 회장과 윌리엄 김 이사장은 연신“(행사가) 너무 좋았다”며“이렇게 많이 오다니 놀랍다”고 했다.
실천적 수행자 법륜 스님, 개념있는 방송인 김제동씨와 함께한 이날 콘서트는 사회자 이부현씨(고교 교사)의 선창에 따라 참가자들 모두“내가 희망입니다”5개항을 제창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5개항에는 법륜 스님의 평소지론이 배어 있었다. 세상이 더럽다 말고 스스로 걸레가 되어 세상을 깨끗하게 하라던 그다, 세상이 어둡다 말고 스스로 등불이 되어 세상을 밝혀주라던 그다, 부처님 이것 해주세요 부처님 저것 해주세요 하지 말고 아이고 부처님 제가 부처님 일 조금이라도 대신 해드릴테니 제 걱정 마시고 좀 쉬시라고 기도해야 한다고 일렀던 그다.
“첫째, 내가 내 인생의 희망이 되어 행복하게 살겠습니다. 둘째, 내가 내 가족의 희망이 되어 화목하게 살겠습니다. 셋째, 내가 사회의 희망이 되어 공정사회 이루겠습니다. 넷째, 내가 민족의 희망이 되어 통일한국 만들겠습니다. 다섯째, 내가 지구의 희망이 되어 환경보호 하겠습니다.”
첫 순서(제1부)로 연단에 오른 법륜 스님은 북미주 각지를 순회하며 청춘콘서트를 열게 된 배경을 ▷젊은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이민생활에 지친 분들에게 웃음을 주고 새롭게 인생에 도전할 마음을 주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그리고는 일순 분위기를 바꿔 선거 얘기를 했다. 오는 대선 때 투표에 많이 참가하라는 독려였다. 야권후보 0순위인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멘토로 널리 알려진 법륜 스님이기에 이제는 누구 찍으라는 암시라도 나오겠다 싶을 즈음에 선거얘기, 아니 투표독려는 멈춰섰다.
중앙선관위가 할 일을 내가 대신한다는 식의 조크가 뒤따랐다. 청중석에선 웃음이 일었다.
몇달 전 한국의 언론을 장식한 오보소동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즉문즉설 과정에서 보육과 직장 사이에서 고민하는 주부에게 아이를 잘 키우기를 강조했더니 언론에 여자는 애나 키워야 한다고 했다는 식으로 비틀어 보도되고, 다음에는 실은 그게 새누리당 유력후보였던 박근혜 의원을 겨냥한 발언이었다는 식으로 한번더 비틀어 보도된 사례를 언급한 뒤 그는 취재진에“이 시간(오후 4시23분)이후(청춘콘서트에서 나온 발언에 대해서는) 보도를 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했다.
비보도 요청은 정치적 오해를 경계한 때문만은 아닌 듯했다. 질문자의 프라이버시를 감안한 배려로 보였다. 실제로 정치발언 자체가 없었다.
청중의 물음표 즉문과 스님의 느낌표 즉설이 한시간가량 꼬리를 물었다. 비보도 요청 때문에 에둘러 표현할 수밖에 없지만, 스님의 즉설을 관통하는 요체는‘꿈에서 깨어나기, 즉 새로운 눈뜨기’였다. 마침 첫 즉문이 꿈 이야기였다. 도무지 꿈이 없다며 어떻게 꿈을 가져야 되는지 궁금하다는 대학생의 하소연이었다.
스님은‘꿈에 대한 꿈’부터 깼다. 꿈이 없다면 뭐든 해도 좋다는 것이니 도리어 좋은 것 아니냐고 즉문자와 청중을 잠시 어리둥절하게 만들고는 꿈이라고 다 좋은 것이 아니라 헛꿈은 꿈꾸는 자를 속박할 뿐임을 경계했다.
출가를 고집하는 고교졸업반 아들 때문에 고민이라며 기왕이면 정토회로 출가시켰으면 한다는 어느 주부의 즉문에도 스님은 환영은 고사하고‘정토회로 출가’에 담겨있을지도 모를‘꿈거품’부터 걷어냈다.
스님은 안받는다, 일만 시킨다, 정토불교대학 마쳐도 스님은 안만든다, 공부 마치면 인도로 어디로 봉사활동 내보낸다 등등. 법륜 스님과 정토회에 대해 일말의 환상도 갖지 말라는 뜻으로 읽혀졌다.
즉문과 즉설이 몇순배 더 돈 뒤에, 미국이민 30여년이 됐다는 중년남자가 마이크를 잡았다. 한국의 정치현실과 지도자들을 보면 답답하고 짜증나는데 어떻게 봐야 하는지?
실천적 수행자 법륜 스님보다는‘안철수의 멘토’법륜 스님에 더 혹해 행사장을 찾은 이들이 있었다면 응당 솔깃할 즉문이었다.
몇달 전 한국에서 자녀 키우기의 소중함을 역설하는 말을“여자는 애나 키워야…”로, 나아가“실은 그게 박근혜를 겨냥해…”로 상상력을 발휘한 기자들이 있었다면, 더더욱 솔깃할 유인구였다. 그러나 스님의 즉설은 묵빈에 가까웠다. 빈곳은 미소로 대신했다.
화를 다스리는 법, 부모와의 갈등을 극복하는 법 등 예의 즉문즉설이 다시 이어졌다. 기독교에서 배울 것에 대한 즉문에는 해박한 성경이야기와 절절한 개인체험담을 섞어가며 길게 즉설했다.
굳이 따지자면 정치발언은 김제동씨가 맡은 제2부에서 잠깐 있었다. 마음만 먹으면 사람을 웃겨서 죽일 수도 있다고 자부하는‘프로웃음꾼’김제동씨도 꼼짝 못하는‘제일 웃기는 것’이‘정치(뉴스)’라는 익살에 모두들 허탈하게 웃음 한번 크게 웃었다.
3부는 법륜 스님과 김제동씨가 나란히 서서 즉문을 받아 즉설을 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3시간30분에 걸친 콘서트가 끝난 뒤에도 법륜 스님과 김제동씨는 책사인과 기념촬영에 응하느라 이삼십분간 행사장을 떠나지 못했다.
<정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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