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운 날이 계속되며 체감온도가 올라감에 따라 옷도 짧아지고 얇아져 신체의 노출 부위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그런데 해가 갈수록 팔뚝이 두꺼워지고 허리가 굵어지니 작년에 입던 여름옷이 맞지 않는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옷장 속을 정리하면 점점 못 입는 옷이 많아지는 것은 유행이 지나서가 아니고 몸이 불어서 뒷등의 자크가 안 올라가고 허리의 호크가 채워지지 않아서이다. 군살을 감추려니 점점 짧은 팔 상의는 입기 망설여지고 화사한 색상은 잡티가 많아진 검은 피부색에 안 어울리고 있다.
어쩌다 옷을 사러 가도 보는 눈은 살아있으니 멋진 디자인과 색상의 옷을 기분 좋게 고르긴 한다. 자신 있게 입어보려 하나 영 구겨진 스타일이 나오거나 어떤 옷은 아예 몸이 들어가지도 않는다. 탈의실 대형 거울에 비친, 도대체 스타일이라고 할 수 없는 펑퍼짐한 모습을 보는 마음은 비감 그 자체다.
40대 여성들은 누구나 이런 기분을 느껴봤을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사진 찍기가 두려워진다는 여성도 있다. 사진은 나이 들어가는 것을 솔직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게 다 일 살이지. 직장 다니랴, 집안 일하랴, 아이 키우랴, 청소하고 밥하고 빨래하느라 손마디가 굵어지고 몸이 불어난 거야. 젊었을 땐 나도 가는 허리에 살집도 없어 코스모스 같다고들 했어.”하거나 “보수적인 남편과 살다보니 집안 일은 고스란히 내 차지지. 배 나왔다, 허리가 없다 구박하지 말고 미국 사는 한인 주부들에게는 훈장 줘야해”하는 40대 여성들, 한탄했다 위안했다 스스로 마음을 바로 잡으려 해도 자꾸 밀쳐진 마음 한 구석이 공허해 지는 것은 이 나이를 지나는 통과의식인가 보다.
아이들은 학교에 다니고 있어 엄마의 손길이 필요하고 남편과의 결혼생활은 적당히 길들여져 그냥 굴러가고 있으며 자신에게 주어진 일은 변함없이 넘치고 있다. 세상은 눈부시게 변해서 나이든 여성에게도 컴퓨터를 배우라 하고 인터넷으로 장도 보라고 한다.
‘이렇게 정신없이 흘러가는 것이 40대인가’ 하던 여성 두 명이 바깥 길거리가 환히 내다보이는 전면 유리창 안의 커피숍에 앉아 남자 품평회를 했다는 말을 들었다.
“얘, 저 남자 좀 봐라, 남자가 무드 있다. “ “아유, 뭐가? 저런 스타일이 좋아? 나는 싫어. 내 스타일은 저 뒤에 오는 남자야. 멋있지 않아.”
사촌 올케와 시누 사이인 그들이 ‘내 스타일, 네 스타일’ 해가며 손만 내밀면 가까이 다가올 듯, 지나가는 남자를 놓고 호기 부리며 품평회 했다는 이야기에 ‘그 재미있는 이야기에 나를 빼놓다니’하며 한참 웃은 적이 있다.
여자 나이 40대는 아무래도 그냥 넘어가는 나이는 아닌 것 같다. 곱던 눈가에는 잔주름이 져 가는데 쳐다보고 이야기 걸어주는 남자는 눈을 씻고 봐도 없다. 이 나이쯤 되면 나름대로 멋진 남자의 기준이 저마다 정해지기 마련이라 그런 사람은 그저 옆에서 구경만 해도 기분이 좋고 가슴이 설렌다는 것이다.
그러다가도 “긴장하여 밥도 잘 못먹고 말도 잘 못하면서 어떻게 살아, 세수도 안하고 머리도 안 빗고 하루종일 같이 있어도 아무렇지 않는, 몸 편하고 마음 편한 것이 제일이지.” 하면서 TV를 보다말고 무방비상태로 퍼져 자는 남편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허긴 그 옛날, 저 남자를 보고 가슴이 설렌 적도 있었지”싶어 새로 발견한 그 사실이 신기하기도 한 나이인 것이다.
무섭게 달려가는 세월은 벌써 새 천년의 첫 해도 반이나 퍼내어 버렸다. 반만 더 지나면 이 해도 간다. 그러나 세월이 가면 어떠랴. 중요한 것은 마음까지 늙어가지 않는 것이다.
늙은 여자의 감성 어린 눈빛도 괜찮은데, 고운 주름살이 그대로 드러난 사진 속에는 젊은이가 갖지 못한 풍부한 연륜과 다정함이 사람들을 푸근하게 감싸줄텐데, 하면서도 나 역시 처음 칼럼을 시작할 때의 수년 전 사진을 좀처럼 바꾸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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