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림픽 사상최초
▶ 장님 러니언, 시드니올림픽 출전권 획득
말라 러니안. 아홉살 때 덮친 망막퇴행성 질환(일명 스타가트병)으로 눈뜬 장님이 돼버린 서른한살의 여자.
그냥 걸어다니는 것조차 ‘식스 센스’나 다른 사람의 도움에 의존해야 하는 러니안이 올림픽 100여년사의 인간승리 드라마중 가장 감동적인 한페이지를 쓰기 시작했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 출전할 미국 여자육상 1,500m 대표로 선발돼 여름올림픽과 겨울올림픽을 통틀어 사상최초로 올림픽 본선무대에 오르는 장님선수가 됐다.
오리건주 유진 출신으로 ‘천형’을 딛고 중거리 스타에의 꿈을 간직한 채 달리고 또 달려온 러니안은 16일 새크라멘토서 벌어진 시드니올림픽 대표선발전 여자 1,500m 결승에서 3위(4분6초44)로 골인, 당당히 올림픽 출전티켓(3장)을 거머쥐었다.
"마지막 코너를 돌면서 3등으로 달리고 있다는 걸 알았어요. 드디어 해냈구나, 꿈이 이뤄진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러니안은 지난달 훈련도중 당한 부상은 차치하더라도 이날 레이스도중 다른 선수와 부닥치지만 않았다면 더좋은 성적을 냈을 수도 있다. 매일같이 훈련을 도와주는 코치가 10m만 떨어져 있어도 찾아내느라 애를 먹는 러니안은 자신의 시력(20-300, 20-400)에 대해 전혀 불평하거나 핑계를 대지 않는다.
"어차피 생긴 일인데 어떡하겠어요. 난 언론에서 법썩을 떠는 것처럼 그렇게 대단하게 여겨본 적이 결코 없어요…난 그저 선수일 뿐이에요. 사상최초로 ‘장님 올림피언’이 되겠다 어쩌겠다고 다짐한 적도 없어요. 다만 올림픽팀에 뽑히고 싶었을 뿐이에요."
시력을 잃기 전까지 축구공과 씨름하다 육상으로 진로를 바꾼 러니안은 92년 바르셀로나 장애인올림픽에서 100m 200m 400m 멀리뛰기 4관왕에 오르며 인간승리 주인공으로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패럴림픽이 아닌 올림픽을 ‘노려봤던’ 그녀는 96년 애틀랜타올림픽 미국대표 선발전에서 7종경기에 도전한다. 허들·높이뛰기 등 장님으로선 불가능에 가까운 세부종목이 섞여있어 ‘끝내기’ 자체가 어렵다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10위를 차지했다. 이후 중거리로 진로를 굳힌 러니안은 99년 세비야 세계육상선수권대회 1,500m에서 10위를 차지, 발로 쓰는 감동의 레이스 예고편을 마무리지었다.
오픈코스에서 벌어지기 때문에 단순히 빨리 뛰는 능력 못지않게 안쪽 레인을 차지하기 위한 몸싸움 머리싸움과 상대선수의 표정을 읽고 순간순간 페이스를 조절하며 승부를 거는 1,500m 레이스. 그러나 부릅떠봐야 어둠뿐인 눈 대신 예민한 귀를 세우고 숨소리 발자국소리로 상대선수의 ‘상태’를 감지하며 레이스를 펼쳐야 하는 러니안. 지금도 그녀는 올림픽대표로 뽑힌, 앞서 골인한 2명의 얼굴을 모른다. 그러나 2개월여 앞으로 다가온 시드니레이스를 훤히 내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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