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대 초 200자 원고지를 들고 장준하 선생(사상계 사장)을 찾아갔다. 일본 유학에서 막 돌아온 나의 글이 궁금하셨던 모양이다.
선생께서는 원고지와 나의 얼굴을 번갈아 보시더니 “글만 보고 글씨는 보지 않겠으니 그런 얼굴 하지 말게” 나의 글씨는 그 정도로 졸필이다. 좀 세련된 글씨를 써 보려고 노력도 해 보았으나 포기한지 오래다.
글씨와 글을 담아내는 200자 원고지는 글쟁이들의 밥그릇이다. 고료는 200자 원고지 한 장에 얼마로 셈되기 때문이다.
오늘 200자 원고지에 대해 생각한다. 왜! 200자 원고지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고려의 도공들이 상감기법으로 고려청자에 문얀을 새겨 나가듯이 글쟁이들이 자신의 뼈를 깎아 종이 위에 글씨를 심어 나가던 200자 원고지가 바로 글쟁이들로부터 외면을 당하고 있다.
컴퓨터라는 괴물에 밀려 출판문화의 뒤안길로 사라져 가고 있는 200자 원고지가 마치 콩크리트 개발 문화에 밀려 불도저 앞에 무참히도 쓰러져 가는 초가집이 연상되어 나는 슬프다.
200자 원고지는 개화의 물결 따라 일본에서 들어온 인쇄문화의 산물이다. 근대 인쇄문화의 선구자인 활판인쇄의 기본 단위가 200자이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지만 활판인쇄소 식자실에 가 본다. 납덩어리로 찍어낸 활자 수십만개가 활자판에 글씨별 크기별로 질서정연하고 꽂혀 있다. 기름투성이의 식자공이 오른손에는 쪽집게, 왼손에는 200자 식자판을 들고 눈높이 도로랭이 빨래줄에 달려있는 200자 원고지에 쓰여있는 글씨를 찾아 좌우로 이동하면서 잽싸게 쪽집게로 활자를 뽑아내 왼손의 200자 식자판에 이식시키는 민첩함이란 탄복을 금할 수 없다. 그러니까 200자 원고지는 활자 인쇄의 편의라는 필요에 따라 생긴 것이라고 보는 것이 한국 출판계의 일반적인 상식이다.
나는 글쟁이가 타자기로 글을 찍어내는 것이 싫다. 글쟁이는 장인정신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프레스로 찍어내는 칼은 은장도가 될 수 없다. 은장도는 장작불에 무쇠덩이를 녹여 골백번 망치질하여 혼을 불어 넣은 칼이어야 한다. 이렇게 만든 은장도야만이 청천과부의 절개를 지켜주고 한을 풀어줄 수 있다.
글쟁이에게 글이란 무엇인가. 혼신의 양식을 펜 끝에 집중시켜 200자 원고지에 피를 토하듯 써내려 가야 한다. 200자 원고지가 사라져가고 있다. 그러나 나는 200자 원고지를 고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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