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가을의 뉴욕은 신선했다. 아침 7시30분에 퀸즈 집에서 출발, 브루클린으로 들어서니 부슬부슬 비가 내리고 있었다. 우산을 펴기에는 부족하다. 가방을 메고 우산을 지팡이 삼으니 영락없는 김삿갓 방랑 삼천리다. 새장을 탈출한 새처럼 날라갈 것 같은 기분이다. 석달 전에 만난 K씨 부부가 생각났다.
“우리 부부는 이번 여름에 프랑스 몽블랑쪽으로 유럽여행을 떠나요. 매년 즐기는 여행코스인데 만달러 넘게 드네요. 이선생님은 어디로 떠나시나요?” “돈이 많으셔서 해마다 호화 해외여행을 즐기시니 부럽군요. 나는 이번 여름 혼자서 퀸즈 브루클린 맨하탄을 걷는 도보여행이나 해볼까 합니다. 10년 넘게 자동차로 달리며 살아온 뉴욕이 어떤 도시인가. 자동차가 들어갈 수 없는 어둔 골목길도 걸어보면서 뉴욕의 그림자를 밟아보려고 합니다”
“아유 멋져 보이네요. 이민자의 도시를 발목이 시도록 혼자 걸어보는게 얼마나 낭만스럽겠어요. 여보, 해마다 가는 유럽여행도 지겨우니 우리도 금년에는 이선생님 따라 뉴욕 걷기 여행을 해요” “당신도 참 딱하구려. 내가 당뇨병 때문에 백보도 제대로 걷지 못하는 걸 잊으셨오?” “아 참!”
1시간 20분을 걸어 브루클린 윌리엄스 브릿지로 들어섰다. 다리 아래로는 맨하탄 동강이 흐르고 동강 위로는 배들이 백조처럼 떠다니고 있었다. 브릿지 서쪽 끝에 맨하탄이 있었다.
오 맨하탄! 아침 9시10분, 집 떠난지 1시간40분만에 맨하탄 땅을 밟은 것이다.
맨하탄에 들어서니 내가 갑자기 점령군이라도 된 기분이 들었다. 내가 맨하탄을 점령했구나! 독도는 우리의 땅이 아니라 맨하탄은 우리의 땅이구나! 밟기만 하면 모조리 내 땅이 되는 줄 알았던 동키호테처럼 나는 맨하탄을 마구 휘젓고 다녔다.
커피를 마시면서 걸어온 맨하탄의 골목길을 메모하려는데 문득 지난날의 살아온 발자취가 필름처럼 떠오르는 것이었다. 메모를 하다 말고 나는 조영남이 부른 ‘나그네 설움’을 허밍으로 중얼거렸다. “오늘도 걷는다마는 정처없는 이 발길, 지나온 자국마다 눈물 고였네.... 타국땅 밟아본지 십년 넘어 반평생 사나이 가슴 속에 한이 서린다. 황혼이 찾아들면 고향이 그리워도 눈물로 꿈을 불러 찾아도 보네”
그렇다! 사람은 끝없는 길을 걸어가는 나그네 인생이다. 산사(山寺)를 찾아가는 구도자(求道者)나 타운카를 몰고 회사로 달리는 사장이나 모두가 길을 걷는 사람들이다. 모퉁이에 앉아 구걸하는 앉은뱅이도 트랙을 달리는 육상선수도 모두가 길 위에 있는 사람들(People on the Way)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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