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호철<서강대 교수, 현 UCLA 교환교수>
세상살이라는 것이 다 그렇듯이 미국생활 역시 한국에 사는 것보다 좋은 점이 있는가 하면 또 나쁜 점도 있게 마련이다. 그렇다면 미국생활에서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은 무엇일까?
대부분 언어문제, 문화적 차이 등이 떠오를 것이고 경우에 따라 자녀들의 마약문제, 총기범죄 등이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대중 교통수단이 발달하지 않고 아이들을 혼자 둘 수 없는 데다가 아이들을 돌봐줄 친지들도 적어 하루 두번씩 아이들의 통학 차편을 주는 것, 그리고 방과 후 퇴근 때까지 아이들이 안전하고 유용하게 시간을 보내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 특히 아이들이 여럿인 경우 이는 정말 여간 고통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사실 아침이야 조금 일찍 일어나 출근길에 아이를 학교에 떨어뜨리면 된다고 하더라도 귀가의 경우 대부분의 가정이 부부 모두가 일을 해야 하는 것이 미국인 상황에서 일을 하다가 나와 아이를 픽업한다는 것, 그리고 퇴근 때까지 아이들의 안전하고 유용한 소일거리를 만들어 준다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다. 게다가 한국에서는 방학이 주부들이 오랜만에 늦잠을 잘 수 있는 즐거운 시간이지만 이 곳의 경우 아이들을 낮시간까지 보내도록 해주어야 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고통스러운 것이 현실이다.
사실 개인적으로 80년대 유학과 한국일보 근무 시절 이를 보고 느껴 알고 있었지만 당시는 아이가 없어 실감을 못하다가 이번에 안식년을 나와 중학교 2학년 다니는 딸아이를 아침, 저녁으로 통학을 시키면서 이 문제를 몸소 실감하게 되었다. 특히 시간 면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내가 이러할진데 그렇지 못한 동포들은 어떠할까 하는 안타까움이 저절로 생겨난다. 그리고 하교 길에 학교에 가보면 학교가 위치한 작은 도로를 경찰이 한쪽을 통제한 가운데 100여대의 자동차들이 아이들을 기다리며 이 골목, 저 골목에 비상등을 켜놓고 이중정차를 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시간과 개솔린 값 등을 합친 사회적 낭비 내지 사회적 비용이 너무도 크다는 생각이 든다.
날 때부터 이같은 것을 보고서 자라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미국인들과 달리 한국에서 아이들이 알아서 학교를 가고, 오는 것을 보아온 동포들의 경우 그 고통이 더 크겠지만 미국인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이는 최근 USA 투데이가 조사한 여론조사 결과가 입증해 주고 있다. 즉 이 신문은 최근 유례없는 경제호황으로 생겨난 정부의 재정흑자의 사용방식에 대한 논쟁, 특히 이를 세금감면을 통해 국민들에게 돌려주어야 한다는 공화당의 주장과 관련해, 세금감면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자 방과 후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것이라고 답한 사람이 68%로 소셜시큐리티와 메디케어의 안정과 함께 수위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문제의 근원에는 맞벌이 부부의 일반화라는 미국의 현실이 자리잡고 있다. 최근 벤처붐에 따라 떼돈을 번 백만장자들이 늘어나면서 푼돈을 벌기 위해 아이를 밖으로 내돌릴 수 없다는 생각에 다시 가정으로 복귀하는 사례가 미상류층에는 늘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성 노동력의 사회 진출은 이제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는 일반화된 현상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가정이 현 경제실정에서 맞벌이가 아니고는 생활하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여성의 취업은 여성의 사회, 경제적 권리의 확대라는 점에서 역사적 진보인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따라서 문제는 여성의 사회참여의 긍정적인 면을 극대화하는 한편, 맞벌이에 따른 아이 양육과 보호의 어려움을 사회적으로 해결함으로써 엄청난 사회적 낭비를 막을 수 있는 방과 후 프로그램, 통학제도 등을 유례없는 재정흑자를 가지고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