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우디에 1대2 완패…일본은 중국 꺾고 결승행
이제는 더이상 불운을 탓할 수 없다. 한국축구의 현주소는 바로 그것이다. 내키지는 않지만 현실을 인정하는 바탕위에서 앞으로의 발전전략을 짜내고 차례차례 실천하지 않으면 멀지않아 오늘의 참담한 결과마저 그리워질 때가 온다.
아시아 최강이라는 자부심을 먹칠하며 가까스로 제12회 아시아선수권대회 4강문턱에 발을 들여놓았던 한국축구가 끝내 결승문턱을 밟지 못했다.
한국은 26일 레바논 트리폴리경기장에서 벌어진 디펜팅 챔피언 사우디 아라비아(96년 11회)와의 준결승에서 스트라이커 탈랄 알-메샬에게 후반 연속골을 내주며 1대2로 패퇴, 정상탈환으로 가는 8부능선을 넘는 데 실패했다. 반면 일본은 이탈리아 프로무대에서 활약중인 최고스타 나카타 히데토시가 소속팀 스케줄 때문에 이번 대회를 통째로 결장한 상태에서도 승승장구를 거듭하더니 준결승 상대 중국에 3대2 역전승을 거두고 결승고지에 안착, 8년만의 패권탈환을 사정거리 안쪽으로 끌어당기며 2002년 월드컵 본선대회를 공동개최하는 ‘이웃사촌’ 한국의 처지를 더욱 초라하게 만들었다.
한국의 패배는 스코어차보다 훨씬 뼈아픈 것이었다. 적어도 아시아 그라운드에서는 질 때 지더라도 당당하게 나서곤 했던 한국축구가 아시안컵을 따러 간 무대에서 승리보다 패배모면에 초점을 둔 듯 초반부터 수비에 급급한 플레이를 펼쳐야 하는 형국이 바로 달라진 위상을 대변하는 것이었다.
사우디 아라비아와의 경기 역시 전반 45분은 물론 후반 30분이 다 될 때까지 한국 선수들은 잔뜩 웅크린 채 고작해야 미드필드에서 지리한 몸싸움을 하는 것으로 시간을 때워나갔다. 마치 70년대 인도네시아나 말레이시아가 한국과 대적할 때면 아예 하프라인 근처에도 얼씬거리지 않은 채 밀집방어로 일관하다 기습골로 뒤통수를 치던 꼴이 새삼 생각나는 한판이자, 한국이 그때 그시절의 말레이시아처럼 뛰었다는 점에서 서글픈 변화이기도 했다.
근근이 버티던 한국 골문이 열린 것은 후반30분. 몇차례 득점위기를 놓친 메샬이 골에어리어 외곽에 도사리고 있다 로빙볼이 날아드는 순간 한국 수비라인 위로 번쩍 솟아올라 강력한 헤딩으로 때늦은 선제골을 뽑아냈다. 골맛을 본 메샬은 불과 5분 뒤 미드필드에서 수비수 사이를 뚫고 한국 문전으로 스며드는 스루패스를 그대로 휘갈겨 두 번째이자 승리쐐기 한방을 꽂아넣었다. 쿠웨이트와의 준준결승에서 연장골든골로 사우디를 준결승 고지에 올려놓은 메샬은 다시한번 가공할 득점력을 과시하며 사우디의 구세주로 확고한 자리를 굳혔다.
뒤늦게 공격수 숫자를 대거 늘려 총반격에 나선 한국은 정규시간을 다 허비한 뒤 인주리타임에 가서야 이동국의 만회골로 겨우 영패를 모면했다. 부상에서 완쾌되지 않은 이동국은 대회 5호골을 기록했으나 한국패배로 빛이 바랬다.
중국이 전반 초반 일본 진영 잔디조차 거의 밟지 못할 정도로 압도적인 경기를 펼친 일본은 21분 타카하라 나오히로의 선제골로 쉽게 이기는 듯했으나 자신감에 넘친 나머지 수비라인을 비워놓다 9분뒤 치 홍에게 기습골을 먹는 등 되레 1대2로 역전당한 채 전반전을 마쳤다. 후반들어 다시 특유의 ‘점조직 팀웍’으로 중국을 차근차근 압박하기 시작한 일본은 8분 니시자와 아키노리가 다이빙 헤딩슛으로 동점골을 넣고 16분 공격에 가담한 수비수 미요진 토모카즈가 통렬한 결승골을 터뜨리며 승리를 완성했다.
지난 92년 10회 대회(일본 우승)때 결승에서 맞붙었던 일본과 사우디는 오는 29일 패권을 놓고 다시한번 격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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