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생 감옥살이 차마 못본다"
▶ 강현구씨 케이스 한인사회에 충격
빗나간 아버지의 자식사랑이 끝내 사고를 냈다.
LA다운타운과 세리토스에서 의류업체 ‘캥거루 인더스트리’사를 운영해온 강모(52)씨는 한때 한인회 이사로, 이회창 미주후원회 창립멤버로 활동하는등 성공한 사업가였지만 탈선한 자식의 인생을 바꿔놓지는 못했다. LA서 강도, 강간등 45개항의 혐의로 유죄가 확정돼 평생을 감옥에서 보내야 할 처지에 놓이자 200만달러를 들여 아들 현구(31·미국명 에디)씨를 보석시킨뒤 서울로 보내 이모의 자식으로 둔갑시켰다가 결국 대마관리법위반혐의로 또다시 법망에 걸려 감방신세를 지게된 강씨의 케이스(본보 29일자 1면보도)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아들에게 감옥 대신 새 인생의 길을 열어주려던 삐뚜러진 아버지 사랑의 예로 지적되고 있다.
가죽의류 무역업을 해온 강씨는 지난 98년 8월 현구씨가 체포돼 LA카운티 형무소에 수감돼 있을 당시 "아들이 억울하게 잡혀들어갔다. 아들을 평생 감옥에서 살게할 수는 없다"며 현구씨를 석방시킬 방법을 백방으로 수소문하고 다녔다. 강씨는 주위를 통해 언론사에도 연락을 해 아들문제를 의논하기까지 했다.
강씨는 "풍족하게 키워 대학까지 보내 놓았는데 못된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갑자기 변하기 시작했다"며 "친구 2명과 한인타운내 아파트에서 자취를 하면서 마약도 하고 데이트서비스 여자들을 불러 돈주고 같이 자기도 했지만 결코 성폭행을 한 적은 없었다"며 아들에 대한 경찰수사에 강한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
부유한 가정에서 풍족하게 자라난 현구씨가 조금씩 비뚤어지기 시작한 것은 지난 96년께부터. 친구들과 어울려 타운내 아파트에서 친구들과 자취를 했고 웨스턴애비뉴의 한 나이트클럽 매니저로 취직해 약 1년동안 일하기도 했다. 주변사람들은 29일 "현구씨는 나이트클럽 매니저로 일할 당시 타운 밤거리를 휘젓고 다니던 LGKK, KPB, 모래시계등 갱 단원들과 가깝게 지내게 됐다"고 전했다. 현구씨가 강도·강간혐의로 체포된 것은 나이트클럽 일을 그만둔뒤 아버지 소유의 건물에서 음료수사업을 하려 할 때였다.
강씨는 미 시민권자이던 현구씨를 서울로 보낸뒤 99년 4월 서울 마포구를 주소지로 국적회복신청을 하게 하고 미국서 전남 다양 향우회장을 맡았던 고모씨를 통해 ‘전지원’이란 새로운 이름으로 이모의 호적에 입적시켰다.
현구씨는 두달뒤인 6월22일 LA카운티 수피리어코트에서 열린 궐석재판에서 271년형을 선고받았으며 법원은 같은해 9월 구속영장을 발부, 한국사법당국에 체포요청을 했었다. 한국검찰은 현구씨가 대마혐의를 받고있지만 초범이기 때문에 집행유예를 받을 것으로 보고 있지만 LA카운티 검찰과 LA경찰국이 한국법에 따른 처벌이 끝난뒤 범죄인인도조약에 따라 현구씨의 신병을 인수받길 원하고 있어 별도의 조치도 고려중이다.
"억울하다. 모든 죄를 내가 다 뒤집어썼다"고 주장하는 아들을 감옥에 보낼 수 없어 또다른 불법을 방조했던 강씨. 법적인 문제를 따지기에 앞서 진정한 아버지의 자식사랑이 무엇인지를 반성하는 계기가 돼야한다는 여론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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