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전쟁사에서 한 획을 그었던 장진호전투와 흥남 철수를 기념하는 행사가 11일 워싱턴 DC 해군 기념광장(7th & P ennsylvania Ave. N.W.)에서 열렸다.
모든 것이 얼어붙을 듯한 기록적인 추위를 기록했던 당시의 상황을 되살리는 듯 차가운 겨울바람 속에 진행된 이날 행사에서 참전 용사들과 군 관계자들은 당시의 상황을 상기하면서 장진호 전투와 흥남 철수가 남긴 역사적 교훈들을 잊지 말기를 당부했다.
흥남 철수를 직접 경험했던 현봉학 교수(아주 의대)는 "UN군의 값진희생과 헌신으로 수많은 한국인들이 목숨을 건지고 자유를 찾을 수 있었다"고 회상하면서 "이제 모든 이산 가족들이 다시 만나고 남북 통일을 이루는 일만이 남았다"고 말했다.
1944년 연세대 의대를 졸업하고 의사로 일하던 현 교수는 한국전이 발발하자 해병대에 자원, 인천 상륙 작전 당시 ‘X 부대’의 일원으로 활약했다. 이후 에드워드 아몬드 중장의 보좌관으로 있던 그는 중공군의 개입으로 피난민들이 흥남에 몰리자 이들을 남쪽으로 대피시켜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해 역사적인 흥남철수 작전이 벌어지는데 일조하기도 했다. 휴전후 미국에 건너온 현교수는 토마스 제퍼슨 의대 등 교직에 40여년간 몸담았으며 현재는 본국 아주대 교수로 전임해 갔다.
한편 이날 에드윈 시몬스 해병준장과 팀 그레고리 대령, 조지 라술라 대령, 토마스 허드너 대위 등 장진호 전투를 몸소 경험했던 역전의 용사들은 당시의 전투 상황을 생생히 전달했으며 리차드 댄지그 해군성 장관은 환영사를 통해 참전 용사들과 가족들의 값진 희생을 치하했다.
장진호 전투는 미 해군과 해병, 그리고 영국군사에서 중요한 족적을 남긴 전투로 기록되고 있는데 두 주간의 전투에서 미 제일 해병 사단은 중공군 7개 사단을 궤멸시킨 것으로 유명하다.
또 흥남 철수에서는 10만명의 연합군과 10만명의 민간인들이 미 3사단의 주도로 남쪽으로 탈출하는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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