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지 유태인이란 이유만으로
▶ 3일 사망... 스포츠 해설의 교과서
"자네들이 유태인이라서 혹 우리가 우승하면 주최자인 나치당국의 심기를 건드리게 될 걸세."
1936년 베를린올림픽에 남자육상 미국대표로 출전했던 마티 글릭만은 400m릴레이 경기를 앞둔 전날 밤 역시 유태인이었던 팀메이트 샘 스톨러와 함께 선수단 간부로부터 이같은 해괴한 소리를 들었다. 빙글빙글 돌려서 건넸지만 긁어부스럼을 내지 말고 알아서 빠져달란 뜻이었다.
요즘의 눈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지만 반유태주의 광기가 개최국 독일을 지배하던 당시로선 당연한 풍경. 글린만과 스톨러는 다음을 벼르며 손에 잡힐 듯한 올림픽 금메달을 포기해야 했다. 뒤이어 터진 2차대전으로 1940년과 1944년 올림픽이 열리지 않는 바람에 그들의 올림픽 골드 드림은 끝내 빛을 보지 못했다.
"그렇게 노골적인 반유태주의가 어디 있나."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도 그때만 떠올리면 혀를 차곤 했던 글릭만이 3일 숨졌다. 향년 83세. 그는 지난달 2일과 14일 뉴욕 레녹스힐 병원에서 두차례 심장수술을 받은 뒤 합병증에 시달려왔다.
육상트랙과 풋볼필드에서 스타플레이어로 명성을 날린 그는 ‘베를린 괴담’ 이후 선수생활에 매력을 잃고 이듬해인 1937년부터 라디오 해설가로 변신을 도모하다 시라큐스대를 졸업한 1939년부터 무려 55년동안 생생하고도 거침없는 달변으로 스포츠 중계의 교과서란 찬사를 듣기에 이르렀다. 뉴욕 스포츠 명예의 전당·스포츠 명예의 전당·NBA 명예의 전당에 두루 그의 이름이 헌액된 것도 뛰어난 중계실력덕분이었다. 98년에는 미 올림픽 위원회가 올림픽운동에 기여한 인사에게 주는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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