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H기자입니다. 여성의 창을 보고, 제자 ‘K’라는 분이 연락처를 남겨놓았습니다. K는 여자 분이시고 S중학교 제자랍니다. 연락처는…”
대학을 졸업하고 첫 발령, 사회 신입생.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 신입생. 교사와 학생이라는 신분만 달랐지 무엇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어디서 끝을 맺어야 하는지, 의욕만 가득했지 어리벙벙하기는 마찬가지인 신입생이었다. K와 나와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했다.
특수 목적 중고등학교로 전교생이 300명 정도. 모두 국비 장학생으로 입학식 한달 전부터 졸업식 한달 전까지 기숙사 생활을 해야 하는 학교였다. 기숙사 규율은 군대에 버금갈 정도로 엄격해서 눈을 감고도 사물함 어느 곳에 무엇이 있는가를 알아야 하고 매일 밤 치러지는 점호는 초긴장, 선후배간의 규율은 그야말로 민간인은 상상할 수 없는 엄격 그 자체, 어느 군부대의 소대를 옮겨다 놓은 것 같았다.
누가 못났고 잘났다 가름할 수 없는 우수한 학생 중에서도, K가 오래도록 내 기억에 남아 있었던 이유는 중학교 1학년치고는 키도 크고, 작고 예쁜 얼굴, 그리고 똑똑하고 야무지고 그 어려운 훈련 중에도 늘 웃는 얼굴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K라면 혹시 하는 마음에 전화를 했다. 제가 K의 남편입니다. 제 처가 선생님 결혼식에도 갔었다고 하던데요. 그리고…”
구구절절이 그 옛날 이야기가 쏟아져 나온다. 그래 맞구나.
시댁에 간 K와는 그 날밤 통화를 할 수 없었다.
선생님 저 K에요. 그래!
이 넓은 땅 미국에서 그것도 아주 가까운 곳에 K가 산다.
가끔 보고싶은 사람들이 생각날 때면 농담 삼아 ‘나 아는 사람들은 미국으로 이민도 안 오나, 동창도 한 명 없고....투덜투덜’ 했었는데 이렇게 가까운 곳에 제자가 있을 줄이야.
마음은 벌써 만나서 밤새 수다를 떨어야 했는데, 생활은 우리의 조급한 맘을 외면한 채 서로의 시간표를 꿰어 맞추느라 K와 나는 아직 만나질 못했다.
다음 주에는 시간표에 구멍이 나는 한이 있더라도 보고싶은 K를 꼭 만나봐야겠다.
15년 만에 만나는 제자인데 미국식으로 멋있게 포옹을 해 볼까. 어디서 만나면 우리의 해후가 더 멋있을까. 뭘 먹을까. 벌써부터 궁리가 많아진다.
K야, 어떠니?
너도 진하게 포옹할 준비하고 나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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