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관 앞을 쓸다가 머리 부분이 빨간 실뱀을 보았다. 순간 나의 외마디 비명에 저도 놀랐는지 고개를 쳐들고 멈칫하는 듯했다. 빗자루를 손에 쥔 채 바르르 떨기만 하다가 뒤늦게 애꿎은 맥문동 덤불만 후려쳤다. 녀석이 그 속으로 숨어든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두 뼘 남짓한 실뱀 하나에 악을 써댄 내가 우습고 한심했다. 놀란 가슴 진정시키며 이런 상황에선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검색을 하다가 큭, 웃음이 삐져나왔다. 이오덕 선생이 어린이들의 시를 모아 엮은 『나도 쓸모 있을걸』에 실린 동시 한 편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돌담은 뱀의 엄마도 되고 다람쥐의 엄마도 되고 쥐의 엄마도 된다는 동시였다. 사람이 잡으려고 하면 돌담인 엄마 품으로 쏙 숨어버린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실뱀을 보자마자 비명을 지르고 쫓아낼 궁리를 하는데 아이는 돌담과 엄마 품을 떠올렸다. 나와 아이의 시선이 이렇게 다른데 나는 과연 동시를 쓸 수 있을까….
몇 년 전부터, 그러니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부터 나는 동시를 짝사랑하게 되었다. 새벽기도 가던 시간에 눈을 비비며 동시집과 시집을 번갈아 읽었다. 무슨 목적이 있는 건 아니고 그냥 좋아서다. 동시를 읽다 보면 마음 안 어딘가에 불이 켜졌다. 어떤 단어나 문장은 나를 오래 붙들어 두었다.
가끔은 다음 페이지를 넘기지 못한 채 멈춰 있기도 했다. 그럴 때면 ‘천사가 지나가는 시간’이라는 말을 떠올린다. 프랑스어권에서 유래된 관용구라고 한다. 대화가 잠시 끊기거나 설명하기 어려운 정적이 흐를 때, 사람들은 “천사가 지나간다”고 말했다. 낭만적인 비유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은데 마음 안에서는 작은 변화가 시작되는 순간. 내게 시를 읽는 시간은 자주 그런 식으로 찾아왔다.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에는 어른을 ‘감정덩어리’라고 말하는 여주인공이 나온다. 하나의 감정이 뭉치고 뭉쳐 사람이 된 것 같다고. 그런데 아이들은 아직 감정이 덩어리지지 않아 예쁘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데 마음이 쿵 하면서 먹먹해졌다. 아이들은 서러우면 금세 울고, 기쁘면 소리 내 웃는다. 돌아서면 또 다른 것에 마음을 빼앗긴다. 감정이 오래 고여 침전되지 않는다. 반면 어른들은 설명하지 못한 상처와 실망, 뒤처질까 두려워 삼켜버린 불안을 마음속에 오래 쌓아 둔다. 그러는 사이 마음은 점점 단단해진다.
헤르만 헤세는 1905년에 쓴 「작은 기쁨」이라는 글에서 “기쁨을 빼앗는 가장 위험한 적은 매 순간에 높은 가치를 부여하며 분주함을 가장 중요한 인생의 목표로 삼는 사고방식”이라고 말했다. 백 년도 더 된 문장이 낯설지 않은 이유는 지금도 여전히 그러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기 때문 아닐까. 나는 가끔 일부러 게으르고 무심한 시간을 남겨 두고 싶다. 그 틈 사이로 오늘도 천사가 무심히 지나가기를 바라며. 마음속 굳은 것들이 다시 낱낱의 감정으로 풀어지기를 바라며.
오월의 우리 집 뒷마당 감나무도 햇살과 바람 속에서 무심한 듯 천천히 짙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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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영라 수필가 미주문협 부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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