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찰기 억류사건으로 정치적 실익, 국내문제 처리시간 벌어가며 지지도 만회
미 해군 첩보정찰기를 둘러싼 중국과의 마찰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 정치적인 선물을 한아름 선사했다.
첩보기가 중국의 하이난 섬에 내려앉기 전까지만 해도 부시는 숨쉬기 거북할 만큼 몰리는 상황이었다.
경기는 갈수록 식어가고, 감세안은 그가 잔뜩 기대했던 대중적 스파크를 일으키지 못한 채 연방상원에서 칼질까지 당했다. 대통령을 겨냥한 환경주의자들의 공세가 힘을 받기 시작했고, 그의 국정수행에 대한 유권자들의 지지도는 급경사의 내리막길로 접어들었다.
ABC뉴스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유권자들은 2대 1의 비율로 그를 "대중보다 기업과 가진 자들을 선호하는 귀족 대통령"으로 규정했다. 3월에 실시된 갤럽조사에서 그의 업무평가 지지도는 63%에서 53%로 무려 10%포인트가 떨어졌다. 한마디로 출구 없이 몰리는 상황이었다.
이처럼 막힌 상황에서 해군 첩보기 사건이 터졌고 중국정부가 24명의 조종사들을 억류하면서 부시는 정치적 탈출구를 찾았다. 내치가 벽에 부딪혔을 때 외부의 위기상황은 지도자에게는 축복이다. 바깥에서의 위기상황은 내부의 결속을 보장해 주는 보증수표이기 때문이다.
그의 아버지가 ‘불황의 그늘’ 속에서 이라크를 두드리는 ‘사막의 폭풍’ 작전으로 90%에 가까운 지지율을 기록했듯, 부시 대통령은 자신이 "전략적 경쟁자"로 규정한 중국과 팽팽히 대치함으로써 상당수의 유권자들을 돌려세웠다. 10일간의 대치는 그의 지지도를 59%로 끌어올려주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바로 이런 효과를 노리고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불장난이 야기시킨 섹스스캔들 정국을 돌파하기 위해 98년 8월, 국제 테러리스트 오스만 빈 라덴의 거점을 폭격했지만 미국민들은 "정치적 위기를 넘기려는 조작"이라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었다. 그러나 이번 정찰기 사건을 조작으로 보는 미국인은 없다.
물론 중국과의 대치카드는 여러 가지 위험성도 내포하고 있었다. 강온과 완급 조절을 잘못했다간 이란의 미 대사관 인질사건으로 이미지를 구겼던 지미 카터 대통령의 전철을 밟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역시 당시와는 사정이 다르다. 미 대사관 인질사건의 피해자들은 민간인들이었으나 24명의 승무원들은 첩보기를 타고 정보수집활동을 하다 타국 영토에 불시착한 군인들이었다. 석방까지 다소 시간이 걸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게다가 바로 이런 특수성 때문에 적당한 시점에 부시가 슬쩍 고개를 숙여 사태를 수습해도 그에 대한 비난여론이 고개를 들 위험은 거의 없다.
이제 그의 시나리오대로 정찰기사건은 수습이 됐다. ‘휴가’가 끝난 것이다. 내치의 다음 수순을 구상할 시간을 벌어가며 지지도까지 높인 그는 다시 썰렁한 현실로 돌아와야 한다. 그의 아버지가 경제위기로 걸프전 이후 수개월 사이에 거의 40포인트의 지지율을 까먹었듯 부시 대통령 역시 경제처방이 먹히지 않으면 또 다른 정찰기가 떨어지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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