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4월 30일은 월남이 이 지구상에서 영원히 사라진 날이다. 미국 포드 대통령이 미군 철수명령을 내리자 1주일만에 월맹군에 의해 수도 사이공이 함락되고 말았다. 그 패망원인은 첫째 미국 국민의 반전주의 운동의 격화, 둘째 자유월남의 부정부패의 극치, 셋째 월맹의 효과적인 민족주의 선전선동 등으로 군사전문가들은 집약하고 있다.
월남전이 끝나고 4반세기가 지났지만 지금까지도 상처가 아물지 않고 자손에 까지 유전되어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전우들은 역시 고엽제 환자일 것이다. 필자는 1966년 백마부대 1진으로 보병소총 중대장으로 참전했다가 돌아와서 십여년 동안 원인이 무언지도 모르고 밤마다 정신 없이 주로 엉덩이를 손톱으로 긁었다.
나는 ‘고엽제를 공중에서 살포하는 것은 예측 불가능한 적정도 아닌데 왜 통보해 주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을 늘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 유연한 기회에 LA 시내에서 당시 주월 한국군 사령부의 주무 참모였던 장군을 만나 그 의문을 물어 볼 수 있었다. 파월 당시 나의 계급은 대위였고 그 분은 장군이었기에 군대 시각으로 하늘과 땅 사이었다. 그분의 첫 말씀이 “이제 같이 늙어 가는구만요”라며 깍듯이 경어를 쓰며 대해 주었다.
나는 단도 직입적으로 ‘고엽제’에 대해서 3가지를 물었다. 첫째 “고엽제가 인체에 닿으면 어떤 부작용이 일어나는지에 대한 교육을 왜 해주지 않았습니까?” 둘째 “동회에서도 소독제를 살포하게 되면 미리 음식물이나 갓난아기를 피할 수 있게 스피커로 요란하게 알려주는데 왜 항공기로 유해 물질인 고엽제를 살포하면서 피할 수 있게 시간과 장소를 하달해 주지 않았습니까?” 셋째 “원래 미군에 비해 소규모인 한국군은 미군에 예속되어 미군사령관의 지휘를 받게 되어 있었는데 왜 분리 독립 지휘하였습니까? 이로 인해 고엽제에 대한 지휘책임을 미국 당국에 걸고넘어지기가 쉽지 않게 되었다고 보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라고 질문했다.
이에 대해서 그는 “당시 한국군이 지휘권을 분리 독립한 것은 미군사령관이 한국군을 위험한 캄보디아 국경선으로 투입하려고 하기 때문이었다” 라는 답변으로 질문의 핵심을 피해 버렸다. 필자는 “군대의 존재가 위험을 피하는 것이라면 해산해야지요” 라는 응답으로 끝냈다.
한국이 월남전에 참전해 덕 본 사람은 따로 있고 죄 없이 전쟁에 내몰린 일반 국민은 평생 고통을 감내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다. 한국에 발전이 있으려면 고엽제 피해를 입은 참전 용사에 대한 보상이 선행돼야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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