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와 라면을 구입할 수 있는 한국마켓도 없다. 한국 최신가요를 반주에 맞춰 열창하거나 인기 드라마를 빌려볼 수 있는 노래방이나 비디오 대여점도 없다. 그것뿐인가. 의사의 진료를 받거나 안경을 맞추는 등 생활하면서 필요한 각종 서비스를 한국어로 받을 수도 없고 한국어 TV나 라디오 방송도 접할 수 없다.
60, 70년대 LA 초기 한인사회의 얘기가 아닌 2001년 현재 팜스프링스 한인사회의 현황이다.
본보가 외곽지역 한인사회를 독자들에게 소개한다는 의도로 기획한 ‘이곳에도 한인타운이’ 시리즈를 취재하기 위해 방문한 팜스프링스는 거리상으로는 LA에서 불과 2시간이면 갈 수 있는 곳이지만 한인사회 규모나 정서 등 모든 면에서 LA 초기 한인사회를 연상시킨다.
상주 한인이 500명도 채 안되다 보니 그 흔한 한인회나 친목 단체도 거의 전무한 상태다.
’서울 나성구’라는 말처럼 미국이면서도 한국의 모든 문화혜택을 누리며 살고 있는 기자에게 ‘이런 곳에서 심심해서 어떻게 살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기는 것은 당연할 일이다.
한인사회가 워낙 작다보니 자영업에 종사하는 한인들에게 한인을 상대로 한 비즈니스는 생각할 수도 없다. LA 한인들이 툭하면 외치는 ‘주류사회 진출’이나 ‘초기 이민자의 정신’이 이 지역 한인들에게는 구호가 아닌 매일같이 극복해야 하는 냉엄한 현실인 것이다.
92년 폭동 직후 운영하던 가게가 전소된 후 이곳으로 이주한 한 한인은 "저희는 좋든 싫든 미국인을 상대로 밥을 먹고살아야 합니다. 정신 바짝 차려야지요. 여기서 살면서 다시 초기 이민자의 자세를 되찾은 것 같습니다"라고 말한다. 또 다른 LA 출신 한인은 "우리가 왕건이나 보고 골프나 즐기려고 미국에 왔습니까. 사교육의 부담에서 벗어나 자녀들이 좋은 환경에서 교육받아 자신의 능력을 키울 수 있고 한국보다 더 잘살기 위해 온 것이 아닌가요. 그런 면에서 이 지역 생활에 대만족입니다. 왕건이 밥 먹여 줍니까"라고 기자에게 일침을 놨다.
한 핏줄을 나눈 동포를 상대로 이민 등 각종 사기행각이 판을 치고 단체간의 알력·이권다툼이 난무하는 LA 한인사회를 잠시나마 벗어나 초기 이민자의 개척자 정신을 갖고 묵묵히 살아가고 있는 이 지역 한인들을 접할 수 있었던 것이 기자가 이번 취재에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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