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관심법(觀心法)’이라는 불교용어가 TV사극 ‘태조 왕건’을 통해 크게 유행했다. 극중에서 궁예는 평소 자신을 미륵불의 화신이라고 자처하며 부하과 측근들에게 "내가 너의 속마음을 다 보고 있다"는 관심법(?)을 쓰면서 애궂은 사람들을 마구 살해했다.
문제는 이제 유행어가 되어버린 ‘관심법’이라는 불교용어가 이렇게 잘못 이해되고 왜곡되게 쓰여져도 괜찮으냐는 것이다. 심지어 야당 정치권에서는 김대중대통령이 얼마 전에 "나는 모든 사람의 행동에 주목하고 있다"는 표현을 물고 늘어져서 "마치 궁예가 관심법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비아냥거렸다고 한다.
한국 정치인들이야 나라살림 걱정보다는 권력다툼에만 이골이 났으니 무슨 말을 하든 별로 귀를 기울일 사람들이 없지만 불교의 중요한 전문용어가 본 뜻에 왜곡되게 유포되어 사람들을 오도하고 있는데는 불자의 한 사람으로서 의분을 느끼지 않을수 없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펴놓으면 팔만사천 법문으로 우주의 비밀이 드러나고, 오무리면 "마음 심(心)"자 한 글자에 시방세계를 머금는다. 그래서 법구경에 의하면 마음을 본다는 ‘관심법(觀心法)’은 자신의 마음이 어떻게 일어나고, 변해서 어떻게 사라지는지 그 자리를 집중적으로 주시하고 관찰하는 불교만이 가진 고유의 수행법이다.
그러나 세인들의 화제에 오르내리고 있는 관심법이라는 말은 전혀 얼토당토한 의미로 쓰여지고 있다. 마음은 마음이되 자신의 마음이 아닌 타인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안다는 독심술의 의미로 쓰여지고 있는 것이다. 이건 언어의 유희도 못되는 넌센스다.
불교에서는 다른 이의 마음을 훤히 볼 수 있는 초능력을 "타심통(他心通)"이라고 한다는 것 쯤은 초보적인 상식에 속하는데 이렇게 잘못된 말을 계속 쓴다는 것은 우리 언어문화에 대한 폭력이라고 본다.
불교에서 강조하는 것은 왜 바른 행위 이전에 바른 언어가 먼저 자리잡고 있느냐는 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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