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고
▶ 강지정<한인가정상담소 가정폭력예방 프로그램 담당>
이번 한인 가정상담소와 한인 청소년회관(KYCC) 합병안이 논의되는 과정에서 신문에 오른 반대의견을 읽으면서 상담소에서 3년째 일하고 있는 직원으로서 느끼고 생각한 점을 이야기해 보고싶다.
합병논의를 반대하는 입장에서 강조한 점은 이민 1세와 1.5세·2세 사이의 차이에 관한 것이었다. 1세 단체는 1세가 운영하는 것이 적절하다든가 1.5세나 2세는 1세 이민세대의 정서를 충분히 이해하기 어렵다는 논의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비영리단체 운영에 관한 의견차이에서 시작하는 것이 이 문제의 윤곽을 그리는 데 도움이 될것 같다. 이민 1세인 어떤 분은 1.5세나 2세에 의해 운영되어온 상담소가 희생과 봉사정신을 잃어 버렸다고 말하면서, 자원봉사자가 전화받고 이사들이 샌드위치를 들고 와서 격려하던 시절을 추억한다.
그 시절은 상담소가 창립되어서 얼마 되지않은 1980년대 이야기이다. 한인이민사회 자체가 급속도로 성장하기 시작한 때이지만 한인사회를 위한 서비스 기관이 거의 전무하다시피 한 상태에서 상담소의 역할이 막중했던 것은 당연하다. 한인사회 자체의 자원이 충분하지 않던 시절이고 소위 주류사회의 자원을 끌어다 쓸수 있는 능력이 아직 제대로 자라지 않은 때였기에 창립회원들이 발로 뛰면서 기금을 확보하고 자원봉사로 시간을 쪼개 일한 것은 그 당시로서는 최선의 방법이고 그 노력이 오늘의 상담소의 밑바탕임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이제 근 20년이 지난 지금 한인사회는 그 성격이 바뀌고 있다. 1.5세와 2세들이 성장해서 사회인으로서 한인사회에 돌아와 일하기 시작한지 오래되었고 1세들의 이민역사도 보통 10여년이 넘은 상태이다. 한인이민사회의 자원이 늘어나고 주류사회와의 교류도 활발해지는 이 시점에 비영리단체를 운영하는 방법이 20년전과 달라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정부보조금이나 지원금은 이행해야 할 서비스와 복잡한 의무절차가 따르는 돈이지 공짜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비영리단체가 전문인력에 의해 운영되어야 하는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이다.
신문 칼럼에서 인용한 어느 1세는 “우리가 자식을 잘못 가르쳐서 어려움을 이기고 희생하고 봉사하는 걸 못 가르쳤다”고 말한다. 일반 비영리단체의 직원 월급은 같은 교육정도나 경력의 영리단체에서 일하는 직원의 대우를 훨씬 밑도는 것이 보통이다. 좋은 조건을 마다하고 비영리단체에서 몇년씩 일하는 1.5세와 2세는 사회 공공분야에서 일하겠다는 각오가 확실한 이민 1세의 그야말로 ‘잘 가르친’ 자식들인 것이다.
합병안에 대한 반대의견을 피력하는 분들은 합병을 하면 1세를 위한 서비스가 없어진다고 염려했다. 1세를 위한 서비스가 그 서비스를 해 왔던 전문 상담인에 의해 지속될 것이라는 거듭되는 설명에도 불구하고 이 의견이 창립회원들에게 가장 걱정스러운 점으로 비쳤던 것은 이 서비스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분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걱정의 정도가 이만큼 될 때에는 이민 1세를 위한 서비스의 존재여부를 넘어서는 보다 깊은 염려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제 성인으로 성장한 1.5세나 2세의 의견과 판단은 현실에 대한 나름대로의 해석이다. 그게 ‘1.5세나 2세’의 의견으로서가 아니라 동등한 한인사회 일원의 의견으로서 받아들여 질 수 있어야만 한인사회의 현안들을 생산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길이 보이게 된다고 생각한다. 희생과 봉사를 통해 한인사회를 일궈 온 1세들의 정신은 늘 그 다음 세대에게 남아 있다. 하지만 희생과 봉사의 방식은 이제 1.5세와 2세가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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