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근교에 사는 한 친구는 요즘 ‘말못할 고민’이 있다고 했다. 고민은 고민인데 ‘고민이다’라고 드러내놓고 말할 수는 없는 고민이라는 것이다. 16살짜리 딸이 난생 처음 보이프렌드가 생겨 들떠있는데, 그 남학생이 타민족인 것이 그에게는 걸린다. 타민족 중에서도 한인들에게 별로 인기없는 멕시칸과 필리핀계 혼혈이다.
“평소에 인종차별은 나쁘다고 가르쳤는데 막상 이런 일이 생기니까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 그런 민족은 안된다고 말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아무말 않고 내버려두자니 이 다음에 결혼 상대로도 타민족 사귈까봐 걱정되고…”
아이들에게 ‘인종차별주의자’란 핀잔을 듣더라도 “코리안 아니면 안돼”하고 애초에 못을 박을걸 그랬나 요즘은 후회가 된다고 했다.
자녀들이 어렸을 때는 타인종·민족과 폭넓게 친구가 되라고 가르치다가 막상 사춘기가 되어 이성 친구를 사귀면 어쩔수 없이 인종 카드를 들고 마는 것이 1세부모들의 정서적 한계이다.
미국에서 타인종에 대한 마음의 장벽이 많이 허물어졌다는 조사결과가 며칠전 워싱턴포스트에 보도되었다. 타인종간 이성교제나 결혼을 보는 시각이 상당히 누그러져서 ‘배척’보다는 ‘수용’으로 사회 분위기가 돌아서고 있다는 것이다. 응답자중 40%가 타인종과 이성교제 경험이 있다고 했다는 데, 이성으로서 사랑하는 것만큼 상대 인종·민족에 대한 편견을 없애는데 효과적인 방법이 있을까. 그런 의미에서 이번 조사는 반가운 결과를 얻어냈다.
이 조사에서 의외인 것은 타인종에 가장 개방적인 집단이 아시안이라는 분석이다. 아시안 남녀는 타인종과 가장 자유롭게 데이트를 하며, 형제나 자녀가 타인종과 결혼하겠다고 하면 70여%가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가 한인사회에서 느끼는 다분히 배타적 기류와는 거리가 있는 분석이다. 그것은 이 조사가 인종을 수평적으로만 이해한데 따른 결과라고 본다. 백인, 흑인, 아시안, 히스패닉등 인종을 수직으로 잘라놓고 보면 이민 1세와 2세, 3세…에 따라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지를 이 조사는 손대지 않았다. 만약 이민 1세만을 대상으로 각 인종·민족을 수평으로 자르면 거기에는 이번 결과와 다른, 그다지 개방적이지 않은 그림이 또 있을 것으로 보인다.
친지 C씨 부부의 며느리 맞은 이야기가 좋은 예이다. 이 부부는 아들이 결혼한지 4년이 되었지만 아직 사돈댁과 만난 적이 없다. 베트남 출신인 며느리 부모가 코리안과의 결혼을 절대 용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들이 베트남 여자를 사귄다고 했을 때 C씨 역시 반대였다. 그러나 상대편 아버지가 너무 강경하게 반대하자 자식이 불쌍해서 생각을 바꾸었다. 여성의 아버지가 반대하는 이유는 두가지였다. 베트남전쟁중 한국군에 대해 생긴 증오로 코리안은 무조건 안된다는 것이고, 가톨릭 신앙을 버리고 개신교 집안으로 시집가는 걸 허락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며느리가 마침내 집에서 쫓겨나자 C씨부부는 사돈없이 단독으로 결혼식을 준비해 둘을 맺어주었다.
배우자의 인종·민족이 다르면 결혼생활은 더 어려운 것일까. 백인 아내와 30여년 살고 있는 60대 M씨의 경험으로는 결혼에서 중요한 것이 인종보다는 같은 생활철학이다.
“유학생이 귀하던 1960년 전후 한국 남자대 여자의 비율은 12대 1 정도였어요. 아주 능력있는 남자 아니면 한국 여성은 꿈도 꿀수 없었지요”
그래서 ‘낙오자’로 밀려 있다가 지금의 아내를 만났는데 “다시 태어나도 같은 선택을 할 것”이라고 그는 자신한다. 물욕 적은 자신의 가치관을 아내가 이해하고 받아들여준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가 하면 젊어서 사랑이 뜨거울 때는 문제가 없었는데, 나이들고 보니 타인종 배우자에게서는 얻지 못하는 어떤 근원적인 허전함 같은 것이 있다는 사람들도 있기는 하다.
타인종과의 결혼에 개방적이라는 이번의 아시안 이미지는 2세, 혹은 3세시대 한인사회의 모습이 될것이다. 한인사회가 지금의 배타적 기류에서 툭터진 개방적 기류로 넘어가자면 개개인이 각자의 힘으로 넘어야할 산들이 높다. 그 산들이 너무 큰 아픔은 아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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