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나아가고 있는 길이 걱정스럽다고 하면 기우일까? 도무지 부시 행정부가 좌충우돌 달려가는 모양이 아슬아슬하고 걱정스럽다. 미국 편을 들지 않으면 적으로 취급하겠다는 일차원적 발상 자체가 골목대장을 연상케 한다.
종교와 인종, 정치권력과 석유자원, 영토와 성지, 가진 자와 안 가진 자 등의 이해 득실이 짧게 보면 80년(유대인만의 국가 건국을 약속한 발포어 선언부터-이것은 오사마 빈 라덴의 주장이다), 중간쯤 잡아도 900여년 (십자군 전쟁부터), 길게 보면 1900년(로마인에 의한 유대인 추방부터) 내지 3000년(유대인의 팔레스타인 정복부터) 동안 피의 역사를 배경으로 얽히고 설켜 있는 속에서 터져 나오고 있는 중동지방 주민들의 미국에 대한 감정을 단순한 오해로 규정짓는 부시 대통령의 판단은 지나치게 단순하다.
국내에서 확산하고 있는 탄저병 테러에 대한 대응책의 갈피를 못 잡고 우왕좌왕하면서 온 국민에게는 앞으로 일주일간 어디에서 어떤 형태로 일어날지는 모르겠지만 대규모 테러에 대비할 것을 당부하는가 하면 그러면서도 일상생활은 변함 없이 유지하라는 등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황당하기만 하다.
더 큰 걱정은 이 위기 속에서 때를 만났다는 듯이 진행되고 있는 보수파들과 대기업들의 몰염치하고 탐욕스러운 정책 추진이다. 9.11 테러 며칠 후 행정부와 의회는 150억달러에 달하는 긴급 보조를 항공업계에 제공할 것을 결정하였다. 일반인에게는 잘 감이 안 잡히는 규모의 이 금액은 미국의 톱 6개 항공사의 시가 총액을 합친 것보다도 큰 액수라고 한다. 이러한 조치가 취해진 후 기다렸다는 듯이 항공업계의 대기업들이 줄을 이어 발표한 것은 힘을 합하여 이 위기를 극복하겠다는 결의가 아니라 10만명이 넘는 대규모 감원조치였다.
뒤이어 행정부가 긴급히 요청한 테러 방지법안은 미국 법정신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수정헌법 제4 및 제5조가 보장하고 있는 인권과 적법 절차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것이다. 다행히도 상원을 거치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 완화되기는 했으나 통과된 법안은 여전히 외국인 구금, 국내외 통신 도청, 비행기 여객에 대한 뒷조사 등의 분야에 있어서 인권에 대한 무신경증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 달 말에 하원을 통과한 경제 활성법안은 참으로 해도 너무 한다는 한탄을 자아내게 한다. 이 법안은 한 마디로 거의 전적으로 대기업과 부유층을 위한 감세안이다. 첫 해에만 1,00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 규모의 이 감세안을 통해 대기업들이 이미 낸 세금을 돌려 받는 환불금만도 250억달러가 넘는다. IBM사에 14억달러, 제너럴 일렉트릭사에 6억 7,000만달러 하는 식이다.
국가가 위기에 처해 있을 때 애국심을 고취하고 대통령을 중심으로 하여 단결하는 것이 두 말할 나위 없이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잘 못된 일에 침묵을 지키는 것은 국가를 위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를 망치는 길이 될 수도 있다. 왜 미국의 언론(한인 포함)은 잠잠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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