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1994-98)에 걸친 전쟁 끝에 아프가니스탄 북부와 카불을 장악했던 탈레반이 불과 수일만에 이 지역을 북부동맹에 내주게된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가장 직접적인 요인은 물론 폭격기와 크루즈 미사일로 6주째 숨돌릴 틈도 주지 않고 계속된 미국의 폭격이다. 마치 1990년대에 탈레반이 파키스탄의 군사력을 등에 업고 북부동맹을 제압했던 것과 같은 상황이다.
칸다하르에서 자라난 탈레반이 내전을 거치며 승자로 자리를 굳히기까지에는 파키스탄의 대포와 사우디아라비아의 돈이 있었다. 그러나 9·11테러에 따른 미국의 테러대전에 파키스탄과 사우디아라비아가 동참, 이 두 가지가 끊어지자 탈레반으로서는 ‘기댈 언덕’이 없어진 셈이다.
아프간 내부의 인종적 요소도 문제였다.
국가가 내전에 휩싸였던 1990년대 중반에는 아프간 최대의 종족인 파슈튠이 탈레반의 승리를 환영했다. 파슈튠은 탈레반의 엄격한 원리주의를 지지하지는 않았으나 탈레반은 어쨌든 평화와 안보를 가져왔던 것이다.
그러나 외국 원조기구들이 탈레반을 상대로 원조에 따른 부수 조치의 시행을 요구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원조를 끊기 시작하자 아프간의 일반 서민들은 탈레반의 정책이 자신들을 궁핍하게 하는지 즉각 알게됐다.
탈레반이 카불에 특별한 의미를 두지 않는다는 것도 손쉬운 카불 함락의 또 다른 요인이다. 탈레반은 모든 중요한 결정을 칸다하르에서 내렸다. 탈레반에 의해 카불로 보내진 각료들은 지나치게 도시 지향적이거나 개방적이라는 의심을 받으며 빈번히 경질되고 지방으로 좌천됐다.
카불에는 정부라는 외형적 조직이 있었을 뿐 권력은 칸다하르에 있었던 것이다. 탈레반이 전력 비축을 위해 아프간 북부를 쉽게 넘겨준 것이라는 러시아 일간 ‘이즈베스티야’지의 분석도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이 신문은 마자르 이 샤리프 주둔 탈레반 주력군이 이미 지난주 북부동맹이 공세를 시작하기 전에 철수했다며 미국의 1단계 지상전은 일단 성공적으로 평가할 수 있지만 향후 전투에서는 훨씬 많은 노력과 희생이 따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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