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마 빈 라덴이 20세기 중반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을 무대로 영국군을 괴롭혔던 전설적 이슬람 테러리스트 ‘이피의 파키르’(Fakir of Ipi)의 영낙없는 재판이라고 영국 일간 ‘데일리 텔레그라프’지가 15일 보도했다.
’데일리 텔레그라프’는 12년간 계속된 파키르의 암약과 영국의 좌절은 2차대전이 끝나고 인도가 독립될 때까지 인도 서북지방 치안을 맡았던 카사다르 경찰군을 지휘한 영국군 장교 4명 가운데 한 명인 프랭크 리슨(75)의 원고에 잘 나타나 있다고 전했다.
40년만에 되찾은 이 원고에 따르면 파키르는 1898년 이피 출생으로 원래 이름은 미르자 알리 칸. 수세기 내전에 시달리던 바지리스탄 지역 산악지대 부족들을 파슈툰족 독립국가 건설이라는 기치 아래 통합한 물라였다. 파키르는 테러를 ‘지하드’라고 선전하며 자신의 종교적 힘이 추종자들을 총탄이나 폭탄으로부터 지켜준다고 믿도록 했던 카리스마도 지닌 인물이었다.
파키르와 그의 추종자들이 호송행렬이나 다리들을 공격하고 힌두교도들을 납치함에 따라 영국은 내키지 않는 군사행동에 돌입했고 어떤 때는 1년에 4만명의 병력과 150만파운드의 거금을 퍼부었으나 파키르는 아프가니스탄과 인도(현재 파키스탄)의 산악·동굴·골짜기를 은신처 삼아 수천명의 주민과 1,000명의 군인을 테러의 제물로 삼으면서 포로에게 끊는 물을 부어 죽인다거나 여성들을 시켜 거세시키는 등 가혹 행위도 서슴치 않았다.
1935년12월31일밤 영국은 파키르가 아르살코트 계곡에 숨어있다는 정보를 입수, 공습과 함께 탱크를 앞세운 3,000명의 보병여단을 동원해 공격했으나 결국 찾아낸 것은 계곡 양쪽으로 늘어선 빈 동굴 8개였다. 몇 달후 영국군은 당시 공격이 파키르가 이미 5마일 떨어진 자리르 코트의 동굴로 옮긴 다음에 이뤄졌다는 사실을 알고 재기습을 감행했으나 현지에 촘촘한 정보망을 펼쳐두고 있던 파키르는 유유히 먼저 빠져나갔다.
2차대전동안 추축국의 비호를 받던 파키르는 인도 정예부대는의 발목을 잡아 다른 곳으로 투입되지 못하게 했다. 궁지에 몰린 영국은 부하의 배신을 부추겨 파키르를 제거하고자 했고 1944년 바지르의 첩자에게 영국공군이 제조한 특수 시한폭탄을 주고 파지르가 숨어있던 동굴을 폭파시키려 했으나 실패했다.
영국은 1938년에는 조건없는 사면을 제안하기도 했으나 거절당했고 1947년 리슨이 인도를 떠날 때까지 파키르는 잡지 못했다. 몇 년후 파키르는 자신의 은신처에서 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리슨은 "영국군의 골치거리였던 파키르와 빈 라덴은 닮은 꼴"이라며 "빈 라덴을 잡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1950년 집필이 끝났으나 출판되지 못했던 이 원고는 1960년 영국군사박물관에 기증된 후 증발했다가 최근 한 책장사가 입수, 리슨은 235파운드를 주고 자신의 원고를 지난주 다시 사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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