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원희<한경대부교수 아메리칸대 파견, 경실련 예산 감시위원회 위원장 >
한국에서 대학입시가 끝나고 말이 많다. 항상 변별력이 문제가 된다. 어려워도 문제, 쉬워도 문제이다. 12년 공부의 결과가 단 하루의 시험만으로 판정 나고, 그 하루의 시험이 한 평생의 운명을 결정하는 매우 위험한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비판은 많지만 별다른 대안이 없다. 그리고 1년마다 다가오는 그 전쟁에서 오로지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박한 상황에서 그저 그렇게 버티고들 있다. 모두가 가해자이고, 모두가 피해자인 진퇴양난의 블랙홀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다.
최근 버지니아와 메릴랜드에서 공립학교 학생의 성적 관리를 강화하겠다는 발표에 학부모들이 이를 반대하는 신선한 데모가 나의 상상력을 자극하였다. 이들이 반대하는 근거는 크게 3가지이다. 첫째, 학생들의 읽기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체육이나 미술 시간을 줄이는 것을 반대한다. 둘째, 표준화된 시험(Standardized Test)은 개성을 존중하는 것이 아니라, 집단화된 표준에 의해 인간을 획일화한다. 셋째, 학교가 새로운 세계를 맛보고 인간을 이해하는 여행의 장소가 아니라, 성적을 잘 받자고 모여든 전쟁터가 된다.
사실 부시 행정부는 개혁의 4대 과제 중 하나로 교육개혁을 내세웠다. 학교 내에서의 총기사건, 마약 문제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으며,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글자를 읽지 못하는 학생이 50%가 넘는다는 보고가 있다. 사실 1900년대부터 시작한 미국의 공교육은 건전한 시민 의식의 함양에 비중을 두었다. 그러다가 1960년대의 인권운동 이후에는 평등 교육, 보통 교육이 핵심을 이루고 있다. 그래서 미국 공교육 개혁의 키워드는 경쟁과 성과이다.
우선 교사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교사 자격증이 없어도 공인회계사 등의 기타 자격증이 있는 사람이 교사로 임용하도록 하여 교사의 질을 향상한다. 그리고 매년 학생들에게 시험을 치르게 하고, 일정 수준에 미치지 못하면 진학을 못하게 한다. 이때 공립학교에서 3년 간 성적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 학생들에게는 바우쳐(학자금 지원 증서)를 주어서 사립학교에서 교육을 받도록 한다. 예산지원을 그냥 하는 것이 아니라, 경쟁을 시키고 학생들에게 학교에 대한 선택권을 확대하려는 것이다. 원론에는 찬성하다가도 이 대목에 이르러 공립학교의 붕괴를 초래할 우려가 있다든지, 국민의 세금으로 사립학교를 지원하는 것이 무리라는 논쟁이 촉발되었다.
하여간 공교육의 위기라고 하는 주제가 태평양을 넘어서 한국과 미국에서 동시에 제기되고 있고, 그 대안이 서로 반대되는 입장에 있다. 간단히 말해 한국은 지나친 경쟁과 시험이 문제이고, 미국은 이제 교육의 영역에 경쟁을 도입하고 시험을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지나치면 모자람보다 못하다’는 우리의 격언처럼 어느 하나를 극단적으로 추구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이다. 우리나라에서 한때, 미국식 교육제도를 받아들이자고 난리법석을 떤 적이 있는데, 결국 미국이 교육실패를 인정한다는 대목에서 의아해 질 수밖에 없다.
교육을 통해 문화를 축적하는 것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고귀한 습성이다. 특히 산업화가 되면서 교육은 부의 세습과 관련되어, 체제를 유지하는 중요한 기능까지 수행하고 있다.
지금 인구의 20%가 학교를 다니지만, 그들은 미래 인구의 100%를 구성한다. 그래서 교육을 바꾸는 것은 역사를 바꾸는 것이고, 문화를 바꾸는 것이다. 최근에 한국에서 사건만 발생하면 인력이 부족하다, 예산이 부족하다는 타령이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예산의 투입은 자칫 탈선한 기차에게 속도를 재촉하는 우를 범할 우려가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화려한 프로그램이나 재정 지출이 아니라,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한국에서 조기 유학 설명회를 개최하면 5만 명 정도가 밀집한다고 한다. 그들의 의견을 모으면 우리의 공교육이 살아날 것인가, 아니면 그들만 없으면 한국 교육이 살아날 것인가. 우리의 교육 정책은 이에 대한 용기 있는 대답에서 출발할 수 있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