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공지영의 소설을 읽어 본 독자들에게, 이 책의 제목은 흥미를 일으킬 수도 있고, 그 반대로 거부반응을 일으킬 수도 있다. 공지영의 소설이 재미있으므로 이 책도 재미있을 것이라고 생각될 수도 있고, 공지영을 그저 읽기 쉬운 소설이나 쓰는 소설가로 알고 있는 독자들에게는 그녀가 수도원 기행을 썼다는 게 순전히 상술인 것 같이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단 책을 읽기 시작하면 서문부터 작가의 진지함이 전해온다. 총 252쪽인 책의 30쪽 정도만 읽어도, 거부감을 느꼈던 독자라도 자신의 판단이 부질없는 편견이었음을 곧 깨닫게 된다.
작가는 인기 있는 소설가다운 달필로 프랑스, 스위스, 이탈리아, 독일의 여러 곳에 있는 수도원의 아름다운 풍경, 각 수도원이 풍기는 독특한 향기, 수사들과 수녀들과의 만남, 그리고 각 수도원까지 가기 위해 작가가 경유하는 도시들의 풍물을 작가가 직접 찍은 사진들과 곁들여 아름답고 재미있게 전해준다.
작가가 숙소의 유리창 밖으로 내다보이는 그림엽서처럼 아름다운 "흰 눈을 머리에 얹은 알프스"의 풍광을 그리는 대목에서는 내가 바로 그 창 앞에 서있는 듯하다. 작가가 "봉쇄된 철창 속의 수녀님이나 세계 각국에서 봉사 활동을 하는 수사님들, 화가들, 편집자들, 운전기사들, 역무원들..."과의 만남을 통해 접하는 "다채로운 화엄 세계"를 우리도 생생히 엿보는 듯 하다.
그러나 이 책의 진가는 구석구석에 스며있는 작가의 숨소리와 통회와 기쁨의 눈물이 아닌가한다. 그래서 이 책은 몇해 동안 소식이 없어 궁금해하던, 오랫동안 마음을 터놓고 지냈던 옛 친구가 어느 날 홀연히 유럽에서 써보낸 반갑고 소중한 편지로 다가온다.
"... 사실 지옥은 누가 우리를 억지로 보내버리는 그런 곳이 아니었나 보다. 곁에 두고 그를 증오하던 마음이, 사랑이 미움 앞에서 무력하게 사라지던 걸 속수무책 바라보아야 했던 그 시절이, 내 스스로 걸어 들어간 지옥이었을 뿐" "...그 깨달음에 이르기까지 걸린 시간이 18년이었다....그리고 돌아가 나는 신에게 무릎을 꿇었던 것이다. 항복합니다, 주님, 하고"
원래 가톨릭 신자이던 작가가 18년 동안 교회에 냉담하다가 교회에 돌아가게 된 즈음에 하게된 수도원 기행이라 그런지 작가의 한마디 한마디가 더욱 진솔하게 가슴에 와 닿는다. 작가가 후기에서 말하듯이 "지친 사람들, 삶의 의미를 찾다가 실의에 빠진 사람들, 따뜻함과 위로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 한때 삶을 미워했던 내 자신의 이야기가 그런 사람들에게 혹여 위안이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누구나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책으로, 크리스마스 선물로도 권하고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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