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테러 직후 한동안 극심하게 위축됐던 항공여행 시장이 외견상이나마 정상수준을 거의 회복하는 것 같다. 하지만, 사람들의 마음속에 한번 각인된 비행기 타기에 대한 두려움은 쉽게 가시지 않고 있다.
직업상 비행기를 자주 타는 크리스티 놀런은 비행공포증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그녀는 비행기 이륙시 두 손을 꼭 잡고 기도해 보지도 않았고, 비행 도중 난기류를 만나 동체가 심하게 흔들릴 때도 그러려니 하고 태연자약했었다. 그런데 9.11테러 이후에는 달라졌다. 놀런은 비행기를 탈 때마다 매우 신경이 쓰인다. 비행기 타는 것 자체는 좋은데 테러가 우려되는 것이다.
대규모 제약회사 중역인 놀런은 직업상 일주일에 한두 번씩 비행기를 타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테러사건 이후 그녀의 항공여행 패턴은 여러 면에서 변화되었다. 예전에는 항공사를 가리지 않았으나, 이제는 신뢰가 더 가는 몇몇 항공사를 취사선택한다. 또 가능한 한 뉴욕행 비행기 여행은 피하고, 연료탱크가 가득 채워지는 미대륙 횡단비행을 할 때는 심사숙고하는 버릇이 생겼다.
놀런과 그녀의 남편 토머스는 자신들이 탄 비행기가 테러범에게 납치되어 배우자에게 ‘최후의 전화’를 해야 할 경우, 그 전화를 받을 것인지에 대한 논의도 해 보았다. 놀런은 전화를 받겠다는 입장인 반면, 남편은 받지 않겠다고 말했다.
놀런은 또, 최소한 올해까지는 세 아들에게 상업용 비행기 여행을 시키지 않겠다는 생각이다. 시카고에 거주하는 놀런 가정은 이번 봄철 휴가 때도 플로리다 키웨스트까지 그 먼 거리를 차를 타고 갈 작정이다.
전반적으로 미국의 항공여행 산업이 정상을 회복하고 있다는 징후는 각종 통계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그러나 미국인들 대다수의 비행기 타기에 대한 관념은 9.11 테러 이전에 비해 훨씬 더 복잡하고, 깊은 심리적 불안을 동반하는 과정으로 바뀐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컬럼비아 대학 임상심리학부 마이클 리보위츠 박사는 분석한다.
"미국인들은 9.11 테러를 계기로 갑자기 죽음의 가능성을 피부로 느끼기 시작했다. 이제 미국인들은 자신들의 목숨에 대해 테러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계산하고 있다"
놀런과 마찬가지로 많은 미국인들이 9.11 이후, ‘안전’이라는 잣대를 기준으로 자신들의 여행패턴을 재조정하고 있다.
머서 경영자문사가 주요 항공사 및 고객들을 상대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조사대상의 14%가 테러공포 때문에 여행패턴을 바꿨으며, 5%에서 7%는 항공여행 자체를 전면 기피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레저여행자들의 45%는 비행기 여행이 불안하다고 말했다.
켄터키주 루이빌의 통신회사 중역 도니 콜빈은 평생동안 비행공포증을 갖고 살아온 사람이다. 그는 지난 해 코네티컷 소재 한 회사가 제공하는 ‘비행공포증 극복 프로그램’을 이수하고 나서야 어느 정도 공포증을 극복할 수 있었다. 자신감을 얻은 그는 지난 해 9월7일, 아내와 함께 당당히 비행기를 타고 플로리다 탬파로 휴가를 떠났다.
이들은 9월12일, 비행기편으로 집으로 돌아갈 예정이었는데 하필 9월11일 테러가 터졌다. 두 부부는 차를 렌트해서 22시간을 운전하여 집으로 돌아갔다. 콜빈의 인생에서 그것이 마지막 비행기 여행이 됐음은 물론이다.
모든 사람들이 콜빈처럼 9.11 테러사건 때문에 비행기 여행을 완전 중단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TV 화면을 통해 9.11 테러의 끔찍한 광경을 반복적으로 접한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비행기 여행에 대한 두려운 이미지가 각인되었다.
은퇴한 상업용 항공기 조종사 톰 번은 "통상 이런 종류의 두려움은 사람들의 심리저변에 깊숙이 뿌리내린다"고 말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9.11 테러 이후, 비행기 타기에 대한 사람들의 대처방식이 저마다 차이를 보인다는 점이다.
혹자들은 특정 상황에서만 선택적으로 비행기를 타는 반면, 혹자들은 특정 항공사나 특정 도시들에 한해서 비행기를 탄다. 놀런 여사처럼 자신은 비행기를 타면서도, 만일을 위해 자녀들의 비행기 여행은 금지시킨 사람들도 많다. 반면, 비행기를 타려면 반드시 자녀들과 동행해야 마음이 편한 사람들도 있다.
문제는 어떤 선택을 하든 그것이 항공여행의 위험으로부터의 완전한 자유를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맨해턴에 있는 헌터대학 심리학 교수 조이스 슬로초워 박사는 "사람들은 이 같은 내적 흥정을 통해 거짓된 안전의식에 자신을 내맡긴다"고 분석한다. 사람들이 비행기를 타는 한, 위험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나름대로의 선택과 조정을 통해 심리적 안전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심리학자들은 이런 심리를 ‘비행기 타기에 대한 비이성적 정당화’라고 부른다.
비행기 안에서 공중폭파 되거나 고층 빌딩에 부딪혀 죽을 확률이 자동차 사고로 죽을 확률보다는 여전히 더 적다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안심시키는 심리가 비이성적 정당화의 좋은 예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