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테러가 발생한지 벌써 6개월이 지났다. 뉴욕 한국일보 창문 건너로 맨해튼 남쪽에 우뚝 서있던 쌍둥이 건물이 검은 연기 기둥에 휩싸여 무너지는 순간을 목격한 것이 아직 눈에 선하다.
반년의 세월은 많은 것을 바꿔놓았다. 미국인들은 허탈감과 분노를 애국심으로 승화했고, 법원에 의해 당선이 결정된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확고한 정치적 리더십을 확보했다.
중앙아시아의 산악국가에서 테러와의 전쟁이 발발, 아직까지 이어지고, 어제의 적이었던 미국과 러시아, 중국은 반테러에 관한한 우방국이 되었다. 세계 금융심장부를 강타한 테러는 미국 경제를 공황으로 몰아넣는게 아닌가 하는 우려를 자아냈으나, 어느덧 세계 최대 경제대국엔 회복의 싹이 돋아나고 있다.
많은 역사학자, 사회학자, 저널리스트들은 테러를 계기로 새로운 밀레니엄과 21세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80년대말 베를린 장벽 해체를 계기로 동서 냉전 체제가 종식되고, 그 공백을 글로벌 단일 시장의 메카니즘이 메웠다.
그러면 이번 테러는 국제질서에 어떤 혁명적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가. 지난 6개월동안의 흐름을 짚어보면, ‘아메리카 제국주의’에 의한 새로운 세계질서가 아닌가 싶다.
로렌스 서머스 하버드대 총장은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 재무부 장관을 지낼 때 “역사적으로 미국은 초강대국으로 제국주의적 무력을 사용하지 않은 유일한 나라”라고 강조한 바 있다.
그러나 테러 후 미국 지식인들의 기류가 변하고 있다. 아프리카, 중동, 아시아, 동유럽의 무정부 질서가 테러의 온상이 되고, 무법자들은 미국을 타깃으로 공격해올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그 예가 지난번 테러이고, 미국의 방임주의가 지속되는 한 또 다른 테러의 위협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다.
구소련이 무너진 후 지난 10년 동안 미국은 아무도 대적할 수 없는 유일한 슈퍼파워로 부상했다. 부시 대통령이 제안한 국방비 증액법안이 의회를 통과하면, 미국의 군사력은 다른 100여개 국가의 군사력을 합친 규모로 커진다. 보수적 논조의 컬럼니스트들은 “미국은 어쩔 수 없이 제국주의 길을 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아무도 대적할 수 없는 초강대국의 힘을 어떻게 사용하느냐 하는 점이다. 미국의 일방적 판단과 힘의 사용으로 세계 질서를 구축해야 한다는 ‘독자주의(Unilateralism)와, 우방과의 협력을 통해 세계 안정의 축으로 존재해야 한다는 ‘다자주의(Multilateralism)’의 논쟁은 미국이 힘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하는 방법론으로 귀결된다.
일방주의와 다자주의의 논란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올초 연두국정연설에서 이라크, 이란,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한 후 본격화되고 있다. 독자주의자들은 반미 국가에 대한 방임적 태도가 테러를 초래했으며, 유럽 등 우방국가의 협조가 미온적이기 때문에 테러 온상지가 되고 있는 지역에 미국의 독자적인 군사 개입을 역설하고 있다.
이에 대해 조셉 나이 하버드대 교수는 저서 ‘미국 무력의 패러독스’에서 “미국은 로마제국 이후 군사적, 경제적, 문화적으로 세계 우위를 차지했다”면서 “그러나 미국이 모든 국제문제를 해결할수 없기 때문에 각국과 협력해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며 나홀로 주의를 경계하고 있다.
최근 부시 정부는 독자주의에서 한발 물러나 다자주의의 견해를 수용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팔레스타인에서 이스라엘군 철수를 요구한 사우디 아라비아의 제안을 미국이 전향적으로 검토하고, 지난달 서울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부시 대통령이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수용한 것도 그러한 예다.
미국이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임은 분명하지만,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미국의 적극적인 대외정책은 우방국의 협조를 얻어낼 때 더욱 힘을 발휘할 것이다. 러시아와 파키스탄을 끌어들임으로써 승리한 아프간 전쟁은 우방의 필요성을 더욱 확인시켜주고 있다.
김인영(서울경제 뉴욕특파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