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게 교훈으로 필요한 사람이 되라고 하는 말을 듣게 된다. 세상에서 뛰어난 사람이 되지 못하더라도 사람에게 필요한 사람이 된다면 그것이 뜻이 있다고 한다.
물론 이런 가르침은 세상의 아이에게는 적용될지 모르지만 그리스도인의 아이에게는 적절하지 못하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필요한 사람이라기보다 세상에 은혜를 베푸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한 개인의 형성이 다른 사람의 필요성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것은 사람들의 필요에 의하여 사람을 형성하게 된다는 뜻이다. 물론 개인이 자발적으로 필요한 사람이 된다고 하더라도 사회에서는 사람들에 의하여 필요한 것이 부각되고 보면 사람의 필요가 사람을 형성하게 된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런 식으로 아이를 키우게 될 때 아이는 이미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자라게 된다고 하게 된다. 그것은 있는 사람들에 의해서 자라나는 아이의 형성이 결정된다고 볼 수 있다.
예수는 사람이 필요한 것을 이루며 사신 것이 아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제거되어야 한다고 하게 되어 십자가를 지시게 되었다. 사람을 죽인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예수는 사람들이 필요한 삶을 사시지 않았지만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풀었다. 십자가를 지시기까지 은혜를 베푸셨다.
필요란 없는 것을 구하는 부정적인 면에서 말하는 것이지만 은혜는 있는 것을 베푸는 긍정적인 면에서 말한다. 그러니 은혜를 주게 되면 그것이 필요한 것을 주는 경우도 있지만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으로 주는 수도 있다.
성경에서 말하는 영의 은사라는 것은 필요성으로 갈구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살면서 영이 필요하기에 구한다고 하는 사람은 없다. 필요라는 것 자체가 육적인 것으로 나오기에 필요한 것은 육적인 것을 충족시켜 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영은 필요성으로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영의 영역을 말하게 되면 은혜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영은 은혜를 받은 사람이 나누어 주는 것이다. 이런 점으로 육의 삶과 영의 삶은 대조가 된다.
육의 삶은 필요한 것이 누구에게나 같은 것일 수 있기 때문에 필요한 것을 토대로 말하게 되지만 영의 삶은 그것을 은혜로 받은 사람만이 보이는 것이기에 나누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육신의 필요와 영의 은혜를 대조하여 말할 수 있다.
육신의 삶은 언제나 만족을 찾아 필요한 것을 말하게 되지만 영의 삶은 충만함으로 베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려고 하면 사람들의 필요를 충족시켜 주어야 하는데, 그러나 그것은 이루어질 수 없다. 왜냐하면 필요한 마음을 없앨 수 없기 때문이다.
은혜를 베푸는 사람은 언제나 마음이 충만하기에 필요를 찾는 마음이 없다. 그래서 마음이 기쁨과 감사로 충일(充溢)하게 된다. 마음이 필요를 찾아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가득한 마음으로 베풀게 된다.
황두용목사(버클리그리스도의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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