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시카고 교외의 한 체육관에서는 흑인 초등학교 세인트 사비나 세인츠팀과 백인학교인 세인트 제럴드 자이언츠팀간 농구경기가 벌어졌다.
그런데, 이날 경기는 두 팀간의 농구경기라기 보다는 흑백인종의 싸움터 같은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온갖 소란이 난무하는 체육관 관중석에는 인종별로 따로 않아있는 흑백 학부모들 사이에 말없는, 그러나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학부모들은 자기 팀이 골을 넣을 때마다 간헐적으로 환호성을 터뜨렸을 뿐, 옆에 있는 상대팀 학부모들에게는 우호적인 대화 한 마디도 건네지 않았다.
코트에서 경기를 하는 어린선수들은 바스켓에 골을 넣는데 열중해 있는 동안, 응원석 학부모들 사이에 흐르는 팽팽한 긴장감의 영향을 받지 않는 듯 했다.
그러나, 이날 경기장에서 내연한 흑백간 갈등은 결국 심각한 결과로 이어졌다. 세인트 사비나 팀의 학부모들과 코치들이 세인드 제럴드 팀과의 경기를 마지막으로, 백인들 일색인 사우스사이드 카톨릭 농구컨퍼런스 중도탈퇴를 선언한 것이다. 흑인학부모들은 지난 몇 달 간 백인리그에 참여하면서 당해온 심한 적대감과 모멸감을 더 이상 견딜수 없다고 성토했다.
이번 사태는 지난 해 5월, 시카고남부 대부분 흑인학생으로 구성된 카톨릭 초등학교 세인트 사비나가 사우스사이드 컨퍼런스 가입을 추진하면서 시작됐다.
리그임원단이 11대 9로 사비나 팀의 가입을 부결시키자, 세인트 사비나에서 사목하는 백인 민권주의자 마이클 후레저 신부가 이는 명백한 인종차별적 결정이라며 항의했다. 여기에 시카고교구 대주교 프랜시스 조지 추기경이 가세하면서 이 문제는 전국적 이슈가 되었고, 한 달 후 사우스사이드 리그는 세인트 사비나를 리그에 포함시켰다.
우여곡절 끝에 세인트 사비나는 리그진입에 성공했으나, 문제가 거기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이 팀의 학부모, 코치, 학생들은 그후 말할수 없는 모욕과 차별을 받아 왔다고 주장한다. 이들이 경험한 가장 보편적인 차별은 백인 학부모들의 차가운 시선, 대화를 전혀 걸지 않는 냉담한 태도 등이다.
또한, 세인트 사비나 팀은 홈경기 때도 홈코트가 아닌 제 3의 중립지대 코트에서 경기를 치뤄야만 했다. 백인학교들이 흑인밀집 지역인 사우스사이드의 안전문제를 우려, 다른지역에서 경기를 갖기를 요구해 왔던 것이다. 한 번은 경기도중 백인학생 선수가 상대팀 흑인선수에게 인종적 욕설을 퍼부은 불상사도 발생했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리그개막 이후 세인트 사비나측은 컨퍼런스 챔피언십 획득이라는 지상목표를 위해 이 모든 모멸감을 극복해 왔다. 이 과정에서 흑인 학부모 및 학생들은 끊임없이 리그참여에 대한 자신들의 의지를 시험받아야 했고, 나중에는 신앙까지도 도전받는 심각한 지경이 되었다.
세인트 사비나가 지난번 세인트 제럴드와 경기를 갖던 시점, 8학년 선수들로 구성된 사비나팀은 시즌 경기스케쥴의 절반을 소화한 상태에서 13승 무패라는 압도적 성적을 올리고 있었다. 사비나 팀에는 8학년이면서 신장 6피트 1인치, 체중 200파운드가 넘는 리처드 찰스 같은 발군의 선수들이 다수 포진되어 있다.
원래 시카고는 대도시 가운데서도 흑백인종차별 의식이 유별났던 전통을 갖고 있는 도시다. 그러나, 백인들이 사비나 팀을 그토록 경원한 배경에는 이같은 전통 외에, 월등한 실력차에서 비롯된 열등감도 일부 작용했으리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하버드 대학의 민권프로젝트 담당자 게리 오필드는 "시카고 메트로 지역에서는 카톨릭 교구설정에서도 흑백간 인종격리적 성향이 선명하다"고 평가한다
오필드는 1999년, ‘변화하는 미국에서의 종교, 인종 및 정의’라는 책을 출간한 이 방면의 권위자다.
"교육, 주거지역, 그리고 종교분야에서도 인종적 격리가 존재하는 현실하에서는 아동들의 흑백간 상호이해 증진기회가 매우 제한된다"
오필드는 진단한다.
이번 사태가 처음 표면화 된 계기는 지난해 12월 18일, 세인트 사비나와 백인학교 팀 세인트 라이너스간에 벌어진 6학년 경기였다. 이날 경기직전 사비나의 흑인코치가 라이너스의 백인코치에게 악수를 건넸는데, 그 백인코치는 흑인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공공연히 등을 돌려버렸다.
이어서 벌어진 세인트 비드 팀과의 8학년 경기에서는 더욱 심각한 상황이 벌어졌다.
이 경기에서 사비나가 40점 차이로 상대팀을 압도한 직후, 상대팀 선수 한 명이 사비나의 클리프톤 존스선수에게 ‘이 니그로야, 니네 고향땅으로 꺼져라’며 최악의 언사를 퍼부은 것이다.
지난 2월에 열린 긴급회의에서 컨퍼런스 당국은 세인트 사비나 쪽이 적당한 선에서 이 문제를 덮을 것을 종용했다. 사비나 팀은 세인트 비드쪽 학부모들로부터 단 한마디 공식적인 사과도 듣지 못한채 분통을 삭이며 문제를 봉합해야만 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컨퍼런스 회장 마이클 필랜이 보인 태도는 사비나측의 분노의 불에 기름을 끼얹은 격이 되었다.
필랜은 사태의 원인제공자인 세인트 비드를 감싸고 돌았을 뿐 아니라, 컨퍼런스 내의 인종차별 기류는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삶의 일부라고 공언하기까지 했다. 결국, 이번 사태는 세인트 사비나가 한 시즌을 다 끝내지 못하고 어린 학생들의 가슴에 깊은 상처를 남긴채 도중하차하는 불상사로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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