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그랬다.
집에서 차로 3분 거리에 화덕에서 장작을 때어 피자를 구워내는 피자 집이 있다. 하얀 모자를 쓴 히스패닉 주방장이 땀을 흘려가며 불붙은 장작을 이리 저리 옮겨서 구워낸 담백하고도 쫄깃한 피자판은 화려하고 열정적인 피자와 어울리게 덩치 큰 그가 구워낸 것이기에 더 맛이 있었다.
그리고, 철판요리 전문 식당에 가면 식칼을 이리 저리 돌려가며 원맨쇼를 하다가 구운 왕새우 조각을 고객의 입 속에 던지는 묘기로 아이들을 까르르 웃겨주는 일본인 요리사는 눈 코 입이 오종종하니 코믹하게 생긴 사람이었기에 더욱 그 일과 어울렸다.
또, 유리문으로 되어 주방이 들여다보이는 수타국수 집에서 뽀빠이처럼 팔뚝이 울퉁불퉁 튀어나온 중국인 숙수가 반죽을 이리 저리 엎어치더니 길게 축축 늘여서 가늘게 뽑아내는 국수를 보면 이 집 자장면 국수가 쫄깃쫄깃 맛있겠다 싶었다.
그뿐인가, 감미로운 음악이 잔잔히 흐르는 불란서 식당에서 붉은 식탁보 위에 촛불이 켜진 자리로 안내하는 매니저가 눈이 파랗고 키가 후리후리하게 잘 생겼다면 더욱 금상첨화였다.
이것은 분명히 인종 차별이고 편견 의식의 발로지만 사람들의 입맛에는 눈요기도 한 몫 한다.
그런데 미국이란 나라가 워낙 세계 온갖 곳에서 몰려든 다양한 인종들이 살다보니 굳이 미국인이 미국식당을, 일본인이 일본식당을, 한국인이 한국식당을 하지 않는다.
프라이드 치킨 집이나 일본식당을 미국인도 하고 인도인도 하고 한국인도 하고 일본인도 한다. 다들 자신이 태어난 조국에서 하던 직업과 지위를 버리고 새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보니 박사님, 교수님, 목사님이 세탁소도 하고 델리도 하고 콜택시 운전도 한다.
그런데 교육학 박사 출신이라고 세탁소를 하면서 교수님 얼굴로 있거나, 취향에 맞지 않으면서도 생업을 위한 것이라며 목사님 얼굴로 있는 콜택시 운전사는 부담스럽다.
사람의 직업에는 생업(生業), 직업(職業), 천직(天職)이 있다고 한다. 오로지 먹고살기 위한 것으로 하는 생업보다는 그래도 자신이 배운 기술과 지식으로 하는 직업이 낫고 또 이왕이면 하늘로부터 물려받은 천성을 지닌 자들이 하는 천직이 낫다.
왜냐하면 그 일 자체가 하는 사람이 좋아서 하는 것은 아무리 힘들어도 힘든 줄 모르기 때문이다.
맨하탄 소호의 어느 한국 식당 주방장은 푸른 눈, 노란 머리의 미국인이다. 한국 음식 만드는 것이 너무 재미있어서 한국에 직접 나가 요리를 배워왔다던 그가 만든 김치찌개, 적당히 매우면서 국물 한 방울까지 남기지 않고 다 먹게 만드는 그 맛은 그야말로 환상적이었다.
지금도 입에 군침이 돌 정도인데 이처럼 고객의 입맛에 딱 맞게 한다면, 그 일에 정성과 애정 없이 못한다. 그는 자신의 직업에 녹아든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달라졌다.
피망, 블랙 올리브, 소시지가 울긋불긋 올려진 피자는 건장한 히스패닉이, 앙징맞게 생긴 스시와 초밥은 날렵하게 생긴 일본인이, 구수한 된장찌개는 토종 한국인이 만들어야 한다는 선입관을 버린 것이다. 중요한 것은 누가 그 요리를 하느냐가 아니라 그 일을 얼마나 성심성의껏 하느냐는 것이다.
요즘 한인사회에는 오랫동안 하던 직업을 바꾸는 일이 잦다.
“새벽부터 장에 나가 물품을 사오고 배달하는 일을 낮에 하는 일로 바꾸려 한다”는 당사자나 “15년이나 했으니 다른 업종으로 바꿀 때도 되지 않았어? 더 큰 비즈니스를 찾아봐 “하는 주위사람들.
그러나 전업이전에 그 일이 재미있고 그 일을 하면 행복한 지를 점검해야 한다. ‘평생 한 길을 걸은 사람들’을 인터뷰 해보면 한결같이 하는 말이 있다.
“나는 이것밖에 할 줄 몰라요. 다른 일은 상상할 수도 없어요. 이 일로 아이들 교육시키고 이만큼 살게되었으니 얼마나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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