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스 히딩크. 지난해 1월부터 위기의 한국축구대표팀을 이끌어온 이 네덜란드출신 50대신사의 인기는 지금 하늘높은 줄 모르고 치솟아 있다. 신문마다 방송마다 사이버 토론마당에서도, 그것도 모자라 길거리에 사무실에 혹은 길모퉁이 다방 한켠에서도 두어사람만 모이면 ‘히딩크 예찬’이 단골 대화메뉴로 오르내린다.
한국축구의 고질병인 골결정력 부족과 수비불안이 히딩크치하 1년반동안 말끔히 해소됐고 수십년묵은 유럽공포증이 완치됐으며 한국축구가 몸으로 때우는 된장축구의 구각을 벗고 비로소 파워와 테크닉이 잘 어우러진 선진 조직축구를 체화해나가고 있으며...
끝없이 이어지는 히딩크 찬가는 거의 예외없이 “프랑스와의 최종평가전 2대3 패배를 놓고 우리도 이만큼 컸다 자위할 게 아니라 이길 수 있었는데 진 걸 서러워해야 한다”느니 “우리도 이제 본선 첫승 16강이 문제가 아니라 8강으로 눈높이를 높여야 한다”느니 달콤한 결론으로 치닫는다.
그러나 기억의 흐름에 도돌이표를 찍어 바로 몇달전으로만 돌아가보자. 취임직후 성적이 나지 않아 가시방석에 올랐던 지난해 전반기 얘기를 새삼 뒤적거릴 필요도 없다. 올해초 태극사단의 북중미 골드컵 부진(승부차기 1승이 포함된 2무3패로 4위) 와중에 보 “한국 토종축구의 씨앗을 말리고 있다” “월드컵이 코앞인데 이대로 놔둘 수 없다. 당장 갈아치워야 한다” “한국인을 뭘로 알기에 대회장에 부인도 아닌 애인을 데리고 다닌단 말인가” “십수억원의 돈만 먹고 튈 ‘먹튀’ 아니냐” 등등 ‘히딩크죽이기’를 위해 사용됐던 그 끔찍한 언사들을 떠올리면 과연 요즘 쏟아지는 끝없는 찬사는 아무래도 낯간지럽고 정도를 넘어선 듯한 느낌이다. 오죽했으면 히딩크 자신이 “본선이 중요하다”며 한껏 부푼 바람을 오히려 빼는 시늉을 하고 있을까.
그러나 한국축구의 발전이 아니라 오로지 한국축구의 승리에만 집착하다보면 태극사단의 본선 성적이 미흡할 경우 또 골드컵때와 같이 그에게 ‘죽일x 살릴x’등 험악한 말의 화살들이 빗발치고 그는 별수없이 영웅에서 역적으로 둔갑할 게 뻔하다. 48년만의 올림픽 승리맛을 다시 보여주고도 8강실패 죄값에 시달려 한국선수단 귀국 비행기조차 타지 않고 애틀랜타에서 러시아로 곧방 귀국했던 아나톨리 비쇼베츠(96년8월)가 그랬고, 아시아 지역예서 1등 통과로 대통령 출마하란 소리까지 들었던 차범근(98년 이맘때 프랑스월드컵)이 그랬고, 99년3월 평가전에서 브라질을 격파하고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2승을 거두고도 8강실패 죄값에 시달리다 뒤이은 아시아선수권 부진으로 여론몰매속에 지휘봉을 내놓아야 했던 허정무(2000년11월)가 그랬고...
월드컵 문턱에 선 지금 여전히 볼륨이 더욱 커져만 가는 저 히딩크찬가는 과연 이르면 폴란드전(6월4일)부터 조금 늦으면 미국전(6월10일)부터 아무리 늦어도 포르투갈전(6월14일) 종료휘슬이 울린 때부터 어떤 음악으로 변해갈까.
<서울-정태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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