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숯불구이 전문식당에서 잘 아는 사람들과 술자리를 함께 할 기회가 있었다. 6명이 모였는데 고기를 정하는데 매우 시끌벅적했다. ‘갈매기살’ ‘쇠고기 등심’ ‘삼겹살’ 등 먹고 싶은 고기가 서로 달랐기 때문.
결국 나이 많은 윗사람의 입맛에 맡기기로 해 ‘생고기 구이’를 먹기로 했다. 이날 따라 얘기 거리도 돼지고기의 ‘감칠 맛’과 쇠고기의 ‘맛깔스러움’으로 이어졌다.
’아롱사태, 제비추리, 갈매기살, 도가니’ 등 부위별 고기 명칭에 따른 얘기를 할 때는 서로 자신의 말이 옳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결론이 나지 않자 내게 물었지만 자신 있게 말할 수 없었다.
그러자 ‘기자가 모르는 것도 있냐’는 얄미운 빈정거림과 ‘독자의 알권리를 채워주지 못한다’는 꾸지람이 쏟아졌다. 그들의 행동에는 장난기가 섞여있었지만, 기분은 아주 꿀꿀했다. ‘다음 번 컬럼을 통해 자세히 알려주겠다’는 약속을 하고는 화제를 얼른 돌렸지만, 가시방석에 앉아있는 듯한 기분은 쉬이 떠나지 않았다.
약속도 지키고 명예회복(?)도 하기 위해 자료를 찾던 중 천소영 문학박사의 ‘우리말의 속살’이란 책을 통해 명쾌한 답을 찾았기에 이를 소개하기로 한다.
이 책의 52쪽에는 ‘아롱사태의 그 은밀한 맛’이란 제목의 글이 실려있다. 이 글에는 부위별 고기 명칭이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우선 도가니탕은 ‘무릎도가니’의 준말로서 소의 무릎에 붙은 종지뼈와 그것을 싸고 있는 살덩이를 가리키는 말이다. 말하자면 종지뼈의 형태가 마치 도가니의 그 우묵한 그릇 모양을 닮았기에 종지뼈 대시 도가니라는 말을 쓰게된 것이라고.
‘갈매기살’은 돼지고기의 가로막을 이루는 살 이름. ‘안창고기’라고도 부르는 이 부위는 가로막았다는 ‘가로막살’이 줄어 갈매기살이 된 것이라 한다. ‘제비추리’의 추리는 꼬리의 옛말인데, 쇠고기에서는 이 부위가 양지머리의 배꼽아래에 붙은 살코기를 가리킨다고. ‘제비초리’라 하면 사람의 뒤 꼭지에 뾰족이 내민 머리털을 칭하는 말인데, 이 말이 묘하게도 모양이 흡사한 쇠고기 부위 명으로 옮아갔다니 흥미롭지 않은가.
쇠고기의 등심과 안심은 각각 ‘안쪽 힘살’과 ‘등의 힘살’로 설명하고 있다.
특히,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었던 것은 고기 부위 명칭 거의가 소박한 우리 고유어로 남아있다는 것. 그 가운데서도 ‘아롱사태’나 ‘뭉치사태’를 가장 멋진 표현으로 꼽고 있다. ‘사태’는 두 다리 사이를 지칭하는 ‘삿다리(샅타리)’가 줄어든 말.
씨름에서 사타구니에 매는 샅바를 상기해 보면 쉽게 이해가 갈 것이다. 샅은 원래 사이(間)의 옛말인 ‘삿’에서 나온 말로 짐승에서 사태는 주로 국부를 가리킨다. 뭉치사태의 뭉치는 이 부위에 살코기가 뭉쳐 있다는 뜻. 아롱사태의 ‘아롱’이라는 아리송할 것 같은 이 말은 ‘아롱무늬’라는 말에서 본래의 뜻을 내 보인다고.
그것이 점이나 무늬가 고르게 총총한 형상을 일러 아롱아롱 또는 아롱다롱이라 하는데, 암소의 그 은밀한 부위에 아롱아롱 아름다운 무늬가 있기에 이런 이름이 붙어진 것이라고 한다.
이처럼, ‘우리말의 속살’이란 책은 부위별 고기명칭에 대한 명쾌한 답을 주기에 충분했다. 무엇보다도 소박한 고유어로 남아있는 고기 명칭을 알게됨으로써 우리말 사용에 대해 다시 한번 깊게 생각해 봐야겠다는 교훈도 얻게됐다.
비록 미국이라는 이국 땅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우리말에는 우리 민족의 정신과 얼이 배어 있기에 이를 결코 쉽사리 내팽개칠 수는 없다’는 문구에는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우리말을 사랑하며 즐겨 쓰는데 충실하지 못한 아쉬움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말이 있듯이, 지금부터라도 일상에서 우리말을 더욱 더 사랑하며 즐겨 써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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