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7년 북한탈출 이용운씨 노모 백홍룡 권사 영전에 눈물
"지난 13일 전화통화에서 ‘한번 더 와’라는 어머니 말씀을 무심히 들었는데 그게 마지막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1997년 11월 북한에 남아있던 9명의 장남 일가족을 탈북시켜 세상을 놀라게 했던 백홍룡(90) 권사가 26일 새벽 운명했다는 소식을 듣고 30일 급거 서울에서 LA에 도착한 장남 이용운(67)씨는 어머니가 사시던 LA다운타운 올리브 노인아파트 1028호 거실 한쪽 벽에 세워진 영정을 바라보며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47년간의 이별 뒤에 짧은 만남이 너무 아쉽고 효도를 제대로 드리지 못한 것이 항상 죄스러웠다는 이씨는 그나마 작년 4월 어머니를 서울로 모셔와 90세 생일상을 차려들릴 수 있었던 것이 다행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또 "어머니께서는 항상 ‘나는 세상을 위한 기도는 다 이뤘다. 이젠 하늘나라에 갈 준비를 하겠다’고 말씀해 왔다"고 전하면서 "평생 나를 위해 기도를 해주셨는데 조금 더 사시지 못하고 가신 것이 너무 안타깝다"며 눈시울을 적셨다.
이씨는 "한국전쟁중 돌아가신 아버님이 묻혀 계시는 경북 예천에 어머니 시신을 모시고 싶었지만 평소 미국을 좋아하셨던 어머니의 뜻을 받아들이기로 했다"며 "함께 오지 못한 서울의 가족들도 큰 슬픔에 잠겨 있다"고 전했다.
백 권사의 사위 이재학씨는 "39세때 남편을 잃고 장남과 47년동안 헤어져 지내다 극적으로 상봉하는 등 정말 파란만장한 삶을 사셨다"며 "그나마 모든 것을 이룬 뒤 하늘나라로 떠나시게 돼 다행"이라고 말했다. 백 권사의 입관예배는 31일 오후6시, 장례예배는 6월1일 오전11시30분 한국장의사에서 엄수된다.
<황성락 기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