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참으로 포근하고 안기고 싶은 단어다. 나 살았던 곳은 전주에서 조금 떨어진 동산촌이란 곳이다. 논과 밭이 둘러있고 흐르는 냇가와 들판의 모정과 노란 개나리꽃과 살구나무, 앵두나무... 순박한 곳이었다. 어렸을 적 엄마의 심부름을 갈 때면 “○○엄마한테 이것 좀 갖다 줘라”라고 말씀하셨다. 대부분 여자들은 결혼하여 살던 곳에서 시집가면 ○○댁으로 호칭이 되어 죽는 날까지 ○○댁으로 남거나 혹은 첫 아이의 이름이 그 엄마의 호칭이 되어 버렸다.
미국 문화 속에서는 이름을 자연스럽게 부르는데 한국 문화는 다르다. 나는 첫째 아들을 낳아 동민이라 한국이름을 지었다. 2세들이 ‘동’자 돌림이라 ‘동’은 빼고 ‘민’이라고만 불렀다. 둘째 아들이 그 다음해에 태어났다. 그 이름은 ‘동진’이라 지었다. 그 다음해엔 첫 딸이자 마지막 딸인 현숙 이가 태어나 영어이름을 샤론(Sharon)이라 불렀다.
첫 아이가 민이라 어느새 나는 ‘민이 엄마’가 되어 있었다. 민이 엄마를 아는 사람들도 옆 사람들에게 민이 엄마라 소개를 한다. 그래서 이 고을에 제일 먼저 아신 분들은 민이 엄마로 되어 버렸고 시간이 흐를수록 나의 호칭은 다양하게 변했다. 어느 날 한국 분을 만나서 연락처를 주고받을 때 ‘동진이 엄마’라고 말했고 또 어느 날은 ‘샤론이 엄마’라고 했다. 왜냐하면 나는 민이 엄마이면서 동진이 엄마이면서 샤론이 엄마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 아는 분들한테 샤론이 엄마, 동진이 엄마, 민이 엄마라고 내가 불려질 때 내 주위에 나의 분신인 아이들이 날 감싸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내가 어느 분한테 누구 엄마라고 소개를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 남편한테 얘기를 했더니 남편은 내게 이렇게 권해 주셨다. 내 나이보다 많은 분들에게는 큰 아이의 이름을 따서 민이 엄마라고 소개하고 비슷한 분들에게는 두 번째 아이의 이름을 따서 동진이 엄마, 그리고 나보다 어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한테는 세 째 아이의 이름을 따서 샤론이 엄마라고 말해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좋은 생각이었다.
그래서 샌디에고 지역에서 나의 호칭은 루디아, 정희, 민이 엄마, 동진이 엄마, 샤론이 엄마이다. 아이들 학교가 끝날 때쯤 나는 차를 타고 그들을 데리러 가는데 내 손안에 그들이 있고 나와 함께 얘기하며 함께 인생의 여정을 가고 있다는 게 얼마나 위로가 되고 고마운지 몰라 눈물이 핑 고였다. 가족과 사랑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이 힘든 이민 생활을 이겨내는 가장 큰 활력소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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