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성칼럼 (세상사는 이야기)
▶ 이정아 <수필가>
회사의 야적장의 긴 담과 주차장 사이의 공간은 별로 쓸모가 없는 공간이다. 주차 할 수 있는 공간인데도 외진 곳이어서 직원이나 방문객들은 그곳에 차를 세우지 않는다. 쓰레기통이 있는 곳으로 하루에 한번 쓰레기를 버리러 갈 때를 제하곤 가질 않는다. 어느 날부터 인지 모르게 홈레스가 한 명 잠을 자기 시작했다. 인적이 드문 곳이니 무숙자에겐 안성맞춤의 장소였으리라. 약간 거슬리기는 했지만 큰 방해도 안될 뿐 아니라, 얄팍한 동정심이 발동하여 싫은 소리 않고 두었다. 여비서 쥬디는 흑인이어서 무섭다고 하기도하고, 쓰레기 비우러 갈 때 가까이 가면 냄새가 진동한다며 코를 싸쥐곤 했다.
쓰레기에서 빈 박스를 찾아내어 사방을 두르기도 하고 깔고도 자는 모양인지 빈 박스가 몇 개 쌓여있었다. 사무실에 새 의자를 사고 길다란 박스가 생겼길래 가져다주었더니, 박스 안에 들어가 자기에 좋다고 새 침대가 생긴 것 마냥 좋아한다. 돈 안들이고 좋은 일 한 것 같고, 나의 배려심에 잠시 우쭐하였다. 그러나 그게 실수였다. 빈 상자까지 갖다바치니 그곳에 살림 차려도 좋다고 허락한 것으로 알았는지 그 다음날 보니 여자 한사람이 더 늘었다. 아침에 차를 주차하려는데 일부러 쫓아와 인사를 시킨다. 자기 걸 프렌드라나? 며칠 두고보니 그저 잠시 방문한 걸프렌드가 아니라 아예 동거하는 걸프렌드였다.
여자를 들이더니 살림이 늘기 시작했다. 어디선가 자동차에서 떼어낸 의자를 주어와서는 응접실도 만들었다. 둘이 앉아 끌어안기도 하고 낯뜨거운 장면도 연출하더니 2인용 소파도 들여놓고, 나무로 된 스탠드형 옷걸이까지 세워 두었다. 그러고 나니 주차면적 세 개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여자의 살림 솜씨가 좋은지 이웃 마켓에서 슬쩍 해온 철제 카트에는 옷가지며 이불등 살림이 가득했다. 그것도 모자라 카트의 쇠창살마다 비닐주머니에 담은 살림을 주렁주렁 달아 놓았는데 한 주머니에는 먹을 것이, 다른 주머니엔 리사이클용 깡통들이, 운동화도 매달려있고, 우산도 사발시계도 있다. 더 걸작은 아기의 접는 유모차도 하나 주어다가 가지고 다니는 거였다.
나가라고 하기엔 살림이 너무 늘었고 미안하였다. 청소하는 이가 와서 일주일에 한번 주차장을 청소할라치면, 가구는 둔 채 살림살이를 가지고 건너편에 가서 청소가 끝나기를 기다린다. 앞이 안보일 정도로 살림이 가득 담긴 세 개의 카트를 쩔쩔 매며 옮기는 두 내외?를 보면서 여러 가지를 생각해 본다. 홈레스가 되었을 땐, 모든 것을 자의 건 타의 건 다 빼았긴 상태였을 것이었다. 경험을 해보진 않았어도 홈레스라 하면 욕심이 없을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날그날 먹을 것만 해결하면 만족할 사람들로 여겼었다. 거지 아버지가 아들에게 "우리는 도둑 맞을 염려가 없으니 행복한 사람들" 이라고 했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말이다.
그러나 인간의 욕심은 컨트롤이 안 되는 것 인가보다. 한데 잠을 자는 처지에 살림을 늘리고 늘리는 무숙자를 보면서 나의 삶도 그들과 별반 다르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쓸데없는 악착을 부려 공연히 지니고있는 것은 없는지, 무소유의 삶을 살아보겠다고 하면서 남들이 모르는 숨겨져 있는 욕심은 없는지 생각해 보니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우리 집만 해도 정작 필요도 없는 물건이 넘치고 있으니 말이다. 가구와 가전제품사이에서 겨우 비집고 사는 격이 아닌지.
주위의 불평 때문에 "방 빼~" 라고 이야기 해야하는데 내겐 큰 숙제이다. 시청에 이야기하면 그들은 무숙자 보호소로 수용이 되고, 살림은 청소차가 치워간다고 한다. 그들의 스위트 홈을 깨려는 나의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오늘도 흰 이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는 그들에게 "굿모닝~" 했지만 마음은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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