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사회에서는 좀처럼 듣기 어려운 낭보를 들었다. 갈라섰던 두 시애틀 한글학교가 다시 합친다는 것이다. 코흘리개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주말학교의 이합집산을 두고 웬 호들갑이냐는 사람도 있겠지만, 모르는 말씀이다.
이 학교의 분란과정을 관심 있게 지켜본 사람들에겐 재결합 뉴스가 삼복더위의 소나기만큼이나 청신한 느낌을 준다.
재결합 결정의 주역인 시애틀 통합학교와 시애틀 한국학교의 교장들은 이미 1년여에 걸쳐 재결합 작업을 은밀하게 추진해왔다고 했다. 학생들에게 보다 나은 수업분위기를 조성해주겠다는 것이 대외적 명분이다. 그러나 그 명분보다 더 큰‘컨센서스’가 한인사회 내에 일고 있다. 통합학교에서 물러난 전 교장이 일부 추종 교사들과 학생들을 데리고 나와 인근에 똑같은 형태의 한국학교를 개설한 것이 잘못됐음이 4년만에 입증된 셈이다.
꼭 시애틀 한인사회에만 국한된 현상은 아니지만 한인들의 폐습 가운데 하나가 분열임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사회단체나 친목단체의 회장이 임기를 끝내면 새 단체를 만들어 다시 회장이 되기 일쑤다. 현 회장과 반목하는 인사가 갈라서서 비슷한 단체를 만드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심지어 성직자들의 세계인 교계에서도 이런 현상이 일어난다.
한글학교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불투명한 재정관리가 문제돼 통합학교 교장직에서 물러난 P씨가 인근에 똑같은 형태의 한국학교를 개설했다. 이 학교는 한때 기존의 통합학교보다 더 많은 학생을 끌어 모으며 분가의 명분으로 내세운‘효율적 교육’의 진수를 입증해 보이는 듯 했다. 그러나 이 학교에서도 P씨가 비슷한 문제로 물러난 뒤 학생수가 수십명 단위로 급감했
고, 그 뒤를 떠맡은 현 교장이 재결합 준비작업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한인사회의 미래는 2세 교육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글학교는 바로 2세들의 뿌리교육을 책임 맡은 중차대한 기관이다. 한인사회의 향도역할을 해야할 학교와 교육계 인사들이 단합하지 않고 분열상을 보일 때 커뮤니티, 특히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은 여느 친목
단체나 영리기관의 분열상보다 훨씬 심각하다.
예를 들어 통합학교에 다니던 아이의 학부모가“새로 생긴 학교가 더 잘 가르친단다”며 자녀를 한국학교에 옮겼다가 이번에 다시 통합학교 소속으로 옮기라면 아이는 혼란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안 그래도 모국어 공부를 달갑지 않게 여기는 어린이들은“한글학교와 한글 선생님은 툭하면 바뀐다”
는 잠재적 불신을 머리 속에 갖게 될 수도 있다.
따라서 두 학교의 재결합 취지가,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듯, 학생 수를 인질로 등록금을 확보해서 운영난을 타개해보겠다는 안일한 발상이라면 오산이다. 명실공히 한인사회의 지원을 한 몸에 받는 통합학교로서 2세 뿌리교육을 질적으로 향상시키고 이들의 문화적 긍지와 정체성을 제고시킬 수 있는 체계적인 교육계획을 학부모들에게 제시해야 한다.
중국 커뮤니티나 유대인들은 한 지역에 한 학교씩만 운영하며 집중적으로 지원한다. 시애틀 한인사회도 재통합된 한글학교를 전폭 지원함으로서 다른 도시에서처럼 수십년씩 근속하는 한글학교 교사가 나올 수 있도록 안정시켜야 한다. 또, 통합을 계기로 본국 정부당국에도 보다 일관성 있는 교재 보급 등 물적, 제도적 지원을 요청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문병록 총영사는 이번 두 학교 통합이 자신의 시애틀 부임이후 최대 경사라고 말한 것으로 보도됐다. 본국 정부에 대한 시애틀 한인사회의 이미지가 그만큼 개선됐다는 뜻이다. 특히, 이번 학교통합을 강력하게 성원한 김준배 한인회장은 “두 학교 통합을 계기로 한인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합치는 마음이 파생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그것이 바로 두 학교 통합이 한인사회에 주는 의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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