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등과 꼴등는 분명 존재한다. 고로 어느 한 사람은 1등의 영광을 어는 한 사람은 꼴등의 수모를 겪어야 한다.
시인 류시화씨는 국문과를 나와 처음 시작한 일이 교사였다. 하지만 그에게 교사라는 직업은 그리 만만하지 안았던것 같다. 딱 정해진 일과가 자신을 시간에 얽메이게 만드는것 같아 부러 지각을 하는 교사였으니 교장선생님의 눈 밖에 나느건 아마도 시간문제 였을 것이다.
그 뿐인가 학습위주의 주입식 공부로 익숙한 학생들에게 메마른 감성을 찾아야 한다며 명작을 읽게하고 시를 외우게 했다. 그러던 어느날... 시험성적이 나왔다. 그는 1등과 꼴등을 앞으로 나오게 했다. 그리고는 매질을 시작한 것이다. 이유인 즉슨 꼴등은 남들 공부할때 놀기만 했으니깐 매질을 하고 1등은 남들 놀때 공부만 했다는 이유로 매질을 했다. 결국 이 일로 짧은 교사생활을 정리하게 됐지만 학생들에게 평생 멋있는 선생님으로 기억되었을지도 모른다.
1등은 말만들어도 좋다. 언젠가 부터 우리는 1등에게만 뜨거운 찬사와 박수를 보내지는 안았는가. 1등에 가려버린 2등은 언제나 뒷전이고 꼴등에게는 말할것도 없다. 올림픽경기에서도 금메달만이 존재하는것 마냥 보인다. 그 많은 시간에 흘린 땀과 노력은 결과로만 판가름 받기엔 너무 아깝다는 생각 든다. 그들은 모두 박수 받을 자격이 있다. 물론 승부의 세계는 냉혹하지만 이 사회에 만연한 1등 제일주의로 2등의 설움(?)은 패자는 말이 없다로 끝이 나버린다. 그래서 인가 유독 국제
시상식장에서 2등 3등한 우리나라 선수들의 굳은 얼굴은 보기가 민망할정도로 굳어 있었다. 반면 다른나라 선수들의 밝은 모습은 모두 승리의 기쁨을 막끽하고 있었다. 1998년 월드컵때 16강진출이 좌절되자 언론은 일제히 선수들과 감독을 죄인처럼 만들었다. 하지만 이번 월드컵 준결승전에서 보인 선수들과 우리의 모습은 비록 진 경기였지만 성숙된 모습과 스포츠의 진정한 의미를 보여준 결승전보다 더 인상 깊은 경기가 되었다. 순위는 정해지지만 진정한 승리위해 노력한 모든 사람들에게 격려의 박수를 칠줄 아는 여유가 우리에게도 생긴것 같아 괜히 어깨가 으쓱해짐은 왜일까?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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