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많던 유학시절, 강도총격으로 하반신 불구, 수 없는 자살기도, 그리고 재기.’ 끝없는 좌절과 고통으로 절규하며 몸부림쳤던 한 젊은이의 눈물겨운 재기 스토리가 한인사회에 가슴 찡한 감동으로 전해진다.
지금은 벤처 기업 사장이자 인터넷을 관리하는 웹매스터로 활약하는 최해주씨(44)는 18년 전의 진저리 치는 악몽을 털어 버린 인간 승리의 장본인으로 뭇 한인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누구 못지 않게 멋진 젊음을 만끽하던 최해주씨에게 불행이 찾아든 84년10월 어느 날. 올림픽 블러버드와 버몬트 애비뉴 인근에 문을 연 ‘프로테니스 슈즈’에 난입한 5인조 흑인강도는 무차별 총격을 가하며 약탈을 시작했다. 척추와 목에 뜨끔한 충격이 전해지면서 "이제는 죽는구나"는 생각이 스치고는 그만이었다. 그가 눈을 뜨고 마주친 곳은 굿사마리탄 병원의 중환자실. "이제는 살았구나" 싶었지만 의료진들의 눈치가 심상치 않았다. 의사의 ‘하반신 불수’라는 폭탄 선언에 최씨는 아득한 나락으로 떨어지는 절망감과 공포로 한동안 말을 못했다.
수도 없는 자살 시도로 응급 차량이 아예 집 앞에 상주할 정도였고 산다는 의미조차 찾아보기 힘든 비관의 4년 동안 한번도 "죽자"는 생각을 지워버린 적이 없었다. 그의 목에 박혀 평생을 함께 살아야 하는 총알처럼 마음속 깊이 도사리고 있는 죽음의 그림자가 그를 늘 쫓아다녔다. ‘극과 극은 통한다’는 말이 맞는 것일까. "어느 날 갑자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최씨는 알 수 없는 한줄기 희망의 빛줄기를 보게 된 것이다.
그가 내딛은 재기의 첫발은 LA 시티칼리지(LACC)에서부터였다. 그러나 쉽지는 않았다. 학업 이외에도 최씨는 끝없이 괴롭히는 악몽, 자신감, 주변의 눈초리와의 끈임 없는 싸움을 해야했다.
LACC 3년, 91년 칼스테이트 LA편입, 98년 회계학 학위 취득, 칼폴리 포모나의 웹매스터 인증 과정, 다시 칼스테이트 LA에서 인턴 등 그에게는 좌절과 재기가 반복되는 끊임없는 도전이었다.
그는 기자를 만나 던진 첫마디가 "장애 극복의 ‘의지’와 새 인생 개척의 ‘욕구’를 놓지 않으면 누구에게나 길이 열립니다"였다.
어엿한 전문인으로 우뚝 선 그는 2000년 가을부터 칼스테이트 LA의 장애인용 웹사이트 개편 프로젝트를 맡아 웹매스터로서의 능력을 과시했고 LA 붉은 악마클럽(www.reddevilclub.com)의 홈페이지 제작에 이어 미주지역 한인교회 전문 홈페이지 제작사인 코리안처치 유에스에이 닷컴(koreanchurchusa.com)을 설립해 홍보에 열중하고 있다.
"한창 피가 끓던 20대 중반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는 생각으로 허비했는데, 나도 사회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에 말할 수 없는 기쁨을 느꼈습니다"
최씨는 칼스테이트 LA에서 특수교육을 가르치는 김효선 박사의 주선으로 주한 미국대사관에 근무했던 미셸 최씨를 만나 96년 결혼했다. 최씨의 연락처는 (626)483-9109 <이의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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