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성칼럼(세상사는 이야기)
▶ 고경호 <화가>
며칠전 그동안 미뤄오던 남편의 시민권 신청을 위하여 한인타운을 찾았다. 한미연합회에 먼저 전화를 하고 약속을 잡은 뒤 일러주는 대로 필요한 기록과 서류를 챙겨서 나갔다. 한미연합회가 다른 봉사기관들과 함께 마련했다는 새 건물로 찾아가니 우리 부부보다도 더 젊은 담당자가 우리를 맞이했다.
컴퓨터를 켠 후 차근차근 우리에게 질문을 하는 그의 모습을 보자니 갑자기 그 자리에 앉아있는 순간이 처음이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언제였더라… 이와 비슷한 기억이 있는데… 그러다가 곧 기억이 났다. 예전에, 거의 20년 전, 이민 초기에 한인 봉사회의 작은 사무실을 찾아가서 어느 연세 지긋하신 어른 앞에 앉아서 무슨 도움을 받고자 서류를 작성하며 앉아 있었던 적이 있었다.
이민초기 때, 관공서의 서류 작성이 생소하고 무슨 실수라도 하면 큰일이 날 것 같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곳에 와서 처음 받은 개스 고지서를 어찌할 줄을 몰라서 햄버거 가게를 하시던 고모부께 들고 갈 정도였으니 어디 모르는 것이 한두 가지였을까.
그때 다니던 교회의 목사님과 교우들께도 이제 생각하면 별별 신세를 다 지었다. 폐를 끼치게 되어 죄송스러워하던 우리 가족에게 뒤에 오는 사람들에게 잘하면 된다시던 그분들, 생각할 때마다 참 감사하다.
그 후로 어느 때부터인가 신기하게도 관공서를 찾아가 하루종일 줄을 설 일이 별로 없었다. 그러다 보니 내 뒤로 미국에 온 다른 사람이 묻는 말에 성의껏 대답을 해주고파도, 내가 겪는 비슷한 환경을 벗어난 일들, 특히 관공서의 일들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몇몇 흔히 듣는 종류의 비자가 어떻게 서로 다른지조차 모르니 말이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편으로는 미안한 감정을 감출 수가 없었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없지만, 친척 덕분에 초청 이민을 와서 이제는 시민권까지 가지고 이곳 생활에 익숙해져서 나만 불편 없이 생활하는 것이 불공평 한 것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가 하는 일들을 놔두고 봉사활동으로 전업할 것도 아닌지라 그럭저럭 지내오던 중이었다.
깨끗한 사무실에서 일을 능숙하게 처리하는 한미연합회 사람들을 만나니, 내가 속으로 어떻게 좀 도와야 할텐데 하면서 정신 없이 사는 동안에, 한인들의 정착과 편의를 위하여 움직였을 누군지 모를 사람들에게 너무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한인사회의 봉사기관들이 이만한 장소를 마련하고 체계를 잡기까지 얼마나 여러 사람들이 애를 썼을까? 기부금 모으고, 정부에다가 길고 긴 서류들을 작성하여 보내고, 일할 사람 찾고, 그러다가 한인사회에 무슨 일이 터지면 여기저기로 처리하러 뛰어다녔을 여러 사람들.
앞에 앉아서 일을 봐주는 청년에게 말을 시켜보니 전공은 건축학인데 사람을 만나고 돕는 일이 적성에 맞아서 그 곳에서 일을 하고 있단다. 동창중의 하나가 검사가 되겠다더니 알콜중독자 재활원에서 일한다고 할 때 속으로 아까운 생각이 들었던 나의 속물근성이 다시 한번 부끄러워졌다.
가끔 신문에 한인단체들의 불협화음이 올라오기도 하지만, 이곳 물정에 어두운 사람들이나 혼자 힘으로는 서기가 힘든 사람들을 돕는 순수한 봉사기관들(비영리 단체들)은 앞으로도 계속 생겨나고 그 활동이 활발해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곳에서 자라고 공부한, 남을 돕는 일이 적성에 맞는 우수한 젊은 일꾼들이 그 곳에 많이 포진하면 더욱 좋겠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