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9월11일 오전 8시46분. 뉴욕 맨해턴.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건물이 검은 연기에 휩싸였다. 미국의 민간 여객기가 잇달아 미사일로 돌변, 파상적인 자살공격에 나섰다. 거의 같은 시각 워싱턴 DC의 국방부 청사도 불바다가 됐다. 대대적 테러가 감행된 것이다. 3,000여명의 무고한 생명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전 미국이 숨을 죽였다. 세계는 충격에 빠져들었다. 시간마저 정지됐다. 충격은 그러나 곧 분노로 바뀌었다. 민간 여객기를, 무고한 생명을 테러무기로 사용하는 반인간적 범죄행위에 국제 사회가 분노한 것이다. 미국은 어느 틈에 성조기의 물결로 뒤덮였다.
그리고 꼭 1년이다. 테러의 현장, 뉴욕 맨해턴 ‘그라운드 제로’. 게티스버그 연설이 낭독되는 가운데 묵념과 예배, 퍼레이드 등 대대적 추도행사가 거행됐다. ‘애국자의 날’이 선포되고 워싱턴 DC의 국방부 청사를 비롯해 전국에서 테러 희생자 추모행사가 열렸다. 또 전 세계 125개 도시에서는 진혼행사가 일제히 펼쳐졌다.
미국의 심장부가 강타 당했다. 미국의 상징이 무너졌다. 국제 사회는 이념과 문명의 경계를 초월해 위로의 메시지를 보내고 현대 문명을 파괴하려는 야만적 테러에 분개했다. 미국은 곧 일어섰다. 대참사 수습에 나선 것이다. 반(反) 문명의 극렬 테러리즘, 미국의 존립, 그 자체를 부정하는 회교근본주의 테러세력 박멸에 나섰다.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이 축출됐다. 테러전쟁은 이제 제2 단계를 맞고 있다. 북한, 이란 등과 함께 ‘악의 축’의 하나로 지목된 이라크에 대한 미국의 군사공격이 임박한 것이다.
1주년을 맞은 9.11사태는 그러면 미국을 제2의 조국으로 선택해 아메리칸 드림을 일구고 있는 미주의 한인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을까. “뉴욕과 워싱턴 DC에서 대참사가 발생했을 때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은 현장에 달려가 아픔을 함께 나누고 도왔다. TV에 비쳐진 그 많은 얼굴들. 그러나 한인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1년 전 본란의 일부 내용이다. 1년이 지난 현재 한인 사회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전쟁은 적개심을 불러일으킨다. 그 적개심은 적을 닮은 소수계에게 쏟아지게 마련이다. 증오범죄가 급증하고 있다는 보도 역시 이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적개심 표출의 타겟은 아무래도 아랍계가 되기 쉽다. 그러나 한인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미국이 상처로 피를 흘리고 있는데 그 아픔을 외면할 때 돌아오는 반응은 결코 호의적일 수 없는 것이다.
다민족 사회 미국의 힘은 자원봉사 정신에 있다. 피부색과 종교, 민족을 초월한 자원봉사 정신이야말로 미국을 지탱시키는 힘이다. 발전의 원동력이다. 이같은 자원봉사를 통해 미국의 아픔을 함께 해야 한다는 게 9.11사태가 한인 사회에게 주고 있는 메시지다.
9.11 1주년이 주고 있는 다른 메시지는 한인 사회는 의식의 전환을 필요로 하는 시점에 와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우리끼리만’의 의식을 버리라는 주문으로, 명실상부한 미국 사회의 일원이 되어 달라는 ‘소리 없는 요청’이다. ‘그라운드 제로’에서 링컨의 게티스버그 연설문이 낭독된 것도 다름이 아니다. 자유와 평등이라는 기반에 입각해 잉태되고 탄생한 미국이다. 남북전쟁, 테러참사 등 온갖 재난을 딛고 다시 찬란하게 태어나는 미국의 위대성에 피부색을 초월해 전 사회 구성원이 참여해야 한다는 메시지다.
이와 함께 한인들에게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주인 의식이다. 그것은 당당한 코리안-아메리칸으로서 미국 사회의 아픔을 함께 하고 치유에 동참하는 자세다. 이민 100주년을 맞은 한인 사회다. 주인으로서 9.11 대참사를 딛고 일어서는 미국 사회 건설에 적극 나설 때가 됐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