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삶 속엔 항상 폭발 일보직전의 분노가 잠재해있다. 며칠 전에 일이다. 출장에서 돌아오는 아내를 픽업하기 위하여 오크랜드공항을 향하여 하이웨이 880번을 달리고 있었는데 나의 앞에서 가던 토요다 한대가 무슨 급한 사정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나의 옆 차선으로 끼어 들더니 아슬아슬하게 요리조리 차선을 옮기며 쏜살같이 달리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새치기를 당한 옆 차선의 혼다가 이에 질세라 경적을 요란하게 울리며 앞차를 계속 따라잡으려 하였다. 나는 그 때 마침 같은 색깔 같은 모델의 혼다를 운전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차를 유심히 보고있었는데 나의 차 유리창으로 잠깐 비쳐진 혼다 운전자의 모습은 그냥 경적만 울리는 것이 아니라 상스러운 손짓을 하면서 혈압이 오른 불그락한 얼굴에 뭐라고 욕설을 퍼부으며 속력을 내고 있었다.
물론 새치기를 한 앞의 토요다 운전자에게 문제가 있다. 하지만 경적을 울리며 이상한 손짓과 함께 욕설과 과속운전 등, 이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할 수 있는 비상한 재주를 가진 이 혼다 운전자는 어떤 인생을 살기에 조그마한 일에 이처럼 분을 내뿜는 것일까. 어떻게 보면 이 토요다와 혼다의 운전자들은 현세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각박한 현실의 단면을 솔직하게 보여주고 있다. 하이웨이 도로상에서 이런 일은 누구나 한번씩은 경험하는 일이지만 살다보면 운전 할 때뿐만 아니라 삶의 여러 면에서 때로는 내가 남을 새치기 할 때도 있고 또 남에게 새치기를 당 할 때도 있다.
성경에 보니까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니라"하였는데 우리의 참을성 없는 욱하는 성질을 걱정하는 말씀인 것 같다. 새치기를 당했을 때, 그 분함과 억울함이 욕설이라도 퍼붓지 않으면 미칠 것만 같지만 이런 급한 분노는 우리의 에너지만 소비하는 결과를 초래 할 뿐이다. 잘 생각하지도 아니하고 급하게 남을 판단하며 화를 내는 것은 서로에게 상처만 줄 뿐 사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꽤 오래 전에 겪었던 일이다. 그 때는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유틸리티 지프차나 미니벤이 나오기 전이어서 보통 승용차보다 조금 큰 스테이션왜건이 유행이었다. 우리 집도 애들이 셋이나 되어서 그 때 당시 거금을 들여서 스테이션왜건을 새로 산지 얼마 안되어서였다. 어느 쇼핑몰 주차장 좁은 공간에 겨우 파킹을 했는데 문을 열고 나올 때 그만 옆의 차를 살짝 건드렸다. 나와서 살펴보니까 다행히도 그 차에 아무런 흔적이 없었다. 그 차의 운전석에 앉아있던 사람에게 가서 미안하다고 사과했지만 그 사람은 험상궂은 얼굴을 펴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겸연적인 마음으로 우리 애들과 함께 그냥 쇼핑 몰로 들어갔는데 어쩐지 그 사람이 마음에 걸려 다시 돌아 나와보니 아니나 다를까 그 친구는 자기 차 문을 열어 나의 새 스테이션왜건을 막 들이박고 있지 않는가. 그 때 나의 격한 분노는 그 친구의 목을 비틀어 버리고도 남았다. 그렇지만 순간적으로 머리를 스쳐 가는 생각이 한국일보에 교회장로가 주차장에서 사람을 죽였다는 기사가 날 것 같았다. 그런데 그 친구 체격을 보니까 나보다 몸집이 두 배나 되어 보였다. 주차장에서 어떤 사람이 교회 장로를 죽였다 라는 기사는 더욱 불행일 것 같아서 그 친구의 목을 비틀 생각을 단념 할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우리 애들이 옆에 있었는데 쇼핑 몰 주차장에서 자기들의 아버지가 어떤 외국인과 어우러져 몸싸움을 하는 추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 그냥 돌아 설 수밖에 없었다.
나는 분을 참으며 아이들과 함께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지만 지금 생각하니까 그 때의 그 사건이 아주 즐거운 추억으로 남아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만일 그 때 내가 어떤 방법으로든지 그 친구에게 앙갚음을 했다면 그 순간 마음이 후련했을 지는 몰라도 지금쯤 두고두고 죄책감을 갖고있을 것이다. 그때 나는 인간의 본능인 앙갚음을 극복할 수 있었음이 지금 나를 얼마나 기쁘게 하는지 모른다.
우리의 마음속에는 항상 분노와 절규가 있지만 이것을 그대로 표출하기 전에 이것을 어떻게 풀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이 평화로운 삶을 유지하는데 아주 중요하다. 퇴근하면서 자동차 라디오를 켜니까 이라크를 폭격할지 모른다는 부시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가 중계되고 있다. 지금처럼 생활이 삭막하고 경제가 어려운 때일수록 우리의 가슴속에 아직 존재하고있는 동심, 순수, 양보, 나눔의 정신을 찾아내어 실천한다면 폭발 일보직전의 분노를 삭일 수 있지 않을까.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