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50명 정도의 조객이 모인 예배당 안은 찬송가 음악이 조용히 흘러 나오고 있었다. 엄숙한 분위기 안에서 나는 몇 명의 지인들과 함께 뒷좌석에 자리를 잡았다. 시간이 되자 성조기로 덮은 관이 서서히 강단 앞에 안치 되었다.
성가대원인 듯한 청년이 유창하게 부르는 성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숙연하게 했다. 관은 그들의 희망에 따라 덮은 채로 장례식이 진행되었다. 며칠전 나와 절친한 미국인 친구의 남편 장례식에 참석했던 이야기다. 3일장으로 이틀전에 소식을 듣고 길눈이 어두운 나는 하루전 딸과 함께 미리 그곳을 답사까지 해 놓고도 아침 일찍부터 찾았는데 그곳 예배당 근방까지 가고도 이리저리 헤매다가 겨우 참석, 나 자신이 참 한심한 생각이 들었다. 그들 내외가 출석하는 교회의 목사님께서 그의 생애 이력을 소개하였다.
매우 성실하게 80평생을 살아온 그의 경력을 대강 요약한다면 그들 부부는 뉴저지주 출생으로 침례교인으로서 교회 써클에서 만나 결혼하고 자녀는 딸 한명을 두었다. 고인이 된 남편은 향학열이 대단해서 44세때 신학대학교를 비롯해서 몇몇 대학을 졸업하고 초등학교 교사로부터 대학강사에 이르기까지 한평생 강단에 섰으며, 남달리 교회봉사 활동에도 충실해 왔다고 했다.
노년에 들어서 그는 고혈압으로 두 번이나 쓰러지고, 심장병으로 고생하면서도 그는 열심히 대학 강의에 나갔다. 미국 가정에서는 이혼이 보편화 된 세상이지만, 그는 한달 후면 결혼생활 60년을 앞두고 떠났다.
나와 그의 부인의 인연은 벌써 4년이 되었다. 아틀란타로 이주한 나는 친구 하나 없던 시기에 YMCA 수영반에서 만나 함께 그림을 그리는 교우로서 절친한 사이다.
특히 그녀는 이곳 사투리를 쓰지 않고, 표준말을 하기때문에 서로 대화에도 별 지장이 없다. 그녀는 20년 전에 유방암 수술도 받고 심장병으로 고생하면서도 모든 활동에 열심이며, 얼마전 까지도 부부가 함께 컴퓨터클래스에 나와 그들과 나는 점심시간도 함께 했었다. 부인은 나의 에세이집에도 기록된 바 있는 ‘애리스’라는 친구다.
나는 미국사람들 장례식에는 처음이었다.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될지 몰라서 다른 친구에게 물어보고, 그곳에 참석 했지만 그곳 분위기가 참 마음에 들었다. 아이들 하나 볼 수 없는 조용하고, 엄숙한 가운데 은은하게 흘러 나오는 음악으로 더욱 고인을 생각게 하는 시간이었다. 장례식이 끝나자 간결하게 준비된 간식이 음료수와 함께 준비되어 있었다.
나는 그들의 장례식을 보면서 우리나라 습관을 생각해 보았다. 우선 서로의 친분 관계상 조의금을 생각해야 되고, 떠들썩하게 사람들이 많아야 떠난자의 친인척 관계를 간파한다며 좋은 식당에서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푸짐하게 먹는다. 그래야 뒷말이 없고 호화로운 장례식이 되는 한국식보다는 꼭 참석해야 될 몇 사람만이라도 떠난자를 슬퍼하며 조촐하게 진심으로 명복을 빌어주는 장례식이 되었으면 훨씬 추모의 뜻이 있을 거라고 혼자 생각하면서 그곳을 떠나왔다.
윤열자/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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