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미 카터는 정말 존경할 만한 인물이다.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고도 20년 후 노벨 평화상을 탔으니 말이다. 일반적으로 ‘대통령’ 하면 인생의 최대 목표이며 정치인의 종착역 삶처럼 여겨져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카터는 이 울타리를 훌쩍 넘어 대통령을 하고도 그 뒤에 더 좋은 삶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 정치인이다.
더구나 지미 카터는 79년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의 로널드 레이건에게 참패한데다 이란 미국대사관 인질사건까지 겹쳐 재기불능의 정치인으로 낙인이 찍혔었다. 현직 대통령이 재선에서 고배를 마신 것은 30여년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전임 포드 대통령도 현직에서 낙선했지만 그는 선출된 대통령이 아니라 닉슨 사임으로 행운을 갖게 된 대통령이다.
카터가 재선에서 떨어지고 난 후 얼마나 비참한 심경이었는가는 그의 자서전에서 솔직히 고백하고 있다.
“로잘린과 나는 선거에서 졌을 때 너무나 충격이 컸다. 우리 부부는 정말 백악관에 4년 더 있기를 원했다. 너무나 할 일이 많았는데 계획 세워놓은 것이 모두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당시 내 나이 56세. 은퇴하기에는 젊었다.”
“고향에 돌아와 보니 빚이 100만달러나 되었다. 농장을 팔아야 했다. 딸 에이미도 공립학교에 보냈다. 우리는 완전히 평범한 시민생활을 다시 시작해야 했다. 무엇을 할 것인가. 막막하기만 했다. 나는 내 인생을 조심스럽게 다시 살펴보았다. 앞으로 25년은 더 활동할 수 있었다. 이때부터 나는 25년을 내다본 인생설계를 시작했다.”
그러니까 카터는 56세에 인생을 백의종군한 셈이다. 제 2의 삶을 출발시킨 것이다. 여기에서 남과 다른 그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보통 남자는 60세 근처에서 직장을 그만두면 당연히 은퇴하는 것으로 생각하게 마련이다. 더구나 대통령을 지낸 사람의 경우에는 국가에서 연금이 나오고 1년에 강연만 몇번 해도 수입이 크기 때문에 은퇴생활을 해도 별로 지장이 없다. 카터는 그 문제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사실 로잘린과 나는 1년에 한 번쯤은 하와이로 여행가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이 대통령을 지낸 사람의 삶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통령을 지낸 사람은 많은 친구를 갖고 있다. 내가 의미 있는 일을 한다면 그들이 나를 도울 것이 아닌가. 로잘린과 나는 하와이 여행을 반납하고 그 시간을 사회봉사에 쓰기로 했다.”
그는 부인과 함께 매년 휴가에 해당하는 일주일을 HABITAT 운동(무주택자 집 지어 주기)에 바치고 있으며 지난해 8월에는 한국 아산에서 이 캠페인을 벌여 김대중 대통령까지 현장에 나왔었다.
대통령에 당선되어 박수 받는 것보다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후 박수 받는 것이 보기에도 더 좋다. 대통령 그만 둔 후 감 놔라 배 놔라 계속 정치판에서 훈수하는 것은 모두 마음이 허전해서 하는 행동이다.
카터가 귀따가울 정도로 강조하는 대통령의 자세가 있다. 그것은 “대통령은 기도할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참모들은 대통령 앞에서 바른 말을 못하며 아내와도 의논할 수 없는 고민이 대통령에게는 있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이때 대통령은 기도를 통해 해답을 얻는 예가 많다고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는다. 대통령이 참모로부터 지혜를 구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대통령 하기 전에는 거의 무명 인사에 가까웠고, 대통령 할 때도 별로 인기가 없다가 대통령을 그만둔 후 20년만에 국민의 존경을 받는 지미 카터의 삶은 세계의 대통령들- 특히 한국의 대통령들이 본받아야 할 시범 케이스로 생각된다.
이철 주필 chullee@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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