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장익환 칼럼
▶ - 의식주 순례 (4)-
『사람은 입고 먹고 살아가는 의·식·주의 기본적인 생리단계를 거쳐, 재산이나 지위 명예를 갖고자 하는 소유단계로 발전하지만, 기쁨을 서로 나누며 서로 만족을 느끼는 존재 단계까지 발전해야 한다.』에리히 프롬이 그의 저서 ‘산다는 것’에서 한 말이다.
사람은 입고 먹고 살면서(Doing), 재물도 가저야 하지만(Having), 사람 구실(Being)도 해가며 살아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현실은 불행하게도 사람이 사람 구실을 하기가 쉽지 않게 되었다. 인간은 더 이상 특별한 존재도 아니고 하물며 만물의 영장(靈長)도 아니게 되었다. 과학문명의 발달로 인간은 살기가 편리해 졌지만 자연의 파괴와 훼손, 물신주의의 팽배, 인간성의 몰락으로 살기가 쉽지 않게 되었다. 어렵다고도 한다. 아예 무섭다고도 한다.
어느 학자는 과학문명의 발전을 광기의 표출이며 환상이며 인간성의 쇠퇴라고 비판하고 마치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침몰하는 ‘타이태닉’ 무도장에서 그러한 사실도 모르고 술과 춤, 사랑과 웃음에 빠져 있는 승객과 같다고 덛붙였다.
분명 지금의 국내외 사태가 그렇고, 피부로 느끼는 우리의 삶이 쉽지 않다. 무서워진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지구촌은 지금 고장난 기구(氣球) 처럼, 침몰하는 타이태닉 처럼 절박한 상태인가. 아니면 그래도 서로 돕고 살면 살만한 곳인가.
9·11테러 특집을 게재한 USA투데이에 소개되었던 살아남은 40대 중반의 생존자 ‘주디 웨인’의 회고담은 이러한 절박한 숙제에 적절한 답을 제시해 주었다. .
『그날 아침도 주디는 잠에서 깨어나 커피 한잔 마시고 캐주얼한 옷을 꺼내 입고 집을 나섰다. 파란 신호등이 막 켜졌는데도 지체한다고 뒤에서 빵빵대는 운전자, “누가 안 간다고 했어, 좀 기다리면 안되나 …" 이렇게 어느 날과 다름없는 아침이었다.
사우스 타워 103층에 있는 자신의 오피스에 도착, 막 일을 시작하려는 순간 120 피트 떨어진 바로 옆 노스 타워 창문으로부터 엄청난 불덩어리가 터져 나와 온 몸이 ‘후끈’함을 느꼈다.
그 순간 그녀는 비상구를 통하여 78층으로 거의 구르다시피 내려왔다. 25층을 10분도 걸리지 않고 내려온 셈이다. 78층 이곳은 1층 메인 로비까지 단 60초에 내려가는 익스프레스 엘리베이터가 운행되는 스카이 로비로 불리는 곳이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려는 찰나 두명의 여인이 문 옆에 서있는 한 남성을 밀치고 들어서려 하자 그 남자는 “이거보세요 여기가 ‘타이태닉’인줄 아세요. 여자와 아이들 먼저라고 생각 마세요…"
결국 주디가 40층까지 비상 계단을 통해 내려왔을 때 물 호스를 끌고 위층으로 올라가는 소방관의 도움으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로비까지 피로 범벅이 된 채 내려왔다. 거기에는 누워있는 동료도 있었고, 잠들어 있는 상사의 시체도 있었다.
슬픔을 느낄 겨를도 없이 응급차에 실려 빌딩 밖으로 빠져나올 순간 그녀의 뒤에서 빌딩은 굉음을 내며 무너져 내렸다. 그 순간 내 머리에 스친 것은 빌딩에 파묻힌 그 소방관들의 인정 어린 눈초리였다.』
1년 뒤 이 악몽을 통해 얻은 주디의 말은 『현재 나에게 주어진 것에 감사하며, 어떠한 상황에서도 화를 참으며, 순간 순간 자신을 다독이고, 남을 위해 봉사하며 살고싶다…』는 것이었다.
극한을 넘고나서 얻은 주디의 생각은 이렇다. 관습에 젖은 일상적인 내가 얼마나 허망한 것이었나 하는 자아발견(自我發見), 그래서 순수한 본래의 마음 자리로 돌아가겠다는 것, 그리고 이 세상에는 ‘여기가 타이태닉인줄 아세요…’ 이런 사람도 있지만 ‘물 호스를 끌고 위층으로 올라가는 소방관’도 있어 그래도 감사하고 인내하고 서로 돕고 살면 아직은 살만한 세상이라는 것이다.
산다는 것은 입고 먹고 사는 의·식·주와 돈, 지위, 명예를 갖는 것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나를 에워싼 사람과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에 대해 따뜻한 시선과 관심을 가져야 하며 거기에서 얻어진 감동을 확산시켜야 한다. 이것이 사람의 도리이고 ‘산다는 것’의 다른 의미이다.
어느 시인이 ‘가을에는 기도도 해야 하지만 울기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늦가을이 단풍을 만들기 때문이다. 한 잎 가랑잎은 시들어 사라지는 한 잎 가랑잎 그 이상도 그 이하의 것도 아닐 수 있다. 그러나 하나의 생명체로 태어나 살다가 끝내는 가지인 모체에 앙상하게 매달려 서로 놓지 않겠다는 단풍잎인 것이다. 그러기에 진 가랑잎은 쓸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였다. 언젠가는 바람에 날려 어디론가 날아가 거름이 되어 우주 순환 속에 수렴되기 때문이다.
/ikhchang@aol.com <멤피스 한인사 편찬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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